[결단의 순간들]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4)

(4)도입비용보다도 싸게 완성 

 핵연료로 쓸 수 있는 것은 우라늄(U), 토륨(Th), 플루토늄(Pu) 등 몇 가지 있지만 우라늄이 대표적이다. 또 핵연료로는 금속이나 여러 가지 화합물 상태로도 쓸 수 있으나, 발전용으로는 대부분 산화물인 ‘이산화우라늄’(UO2)을 사용한다.

 핵연료는 무엇보다 원자로의 고온, 고압에서도 그 형태나 물성을 그대로 유지해야만 안전하기 때문에 UO2분말을 일정모양으로 찍어서 만든 다음 1700℃ 정도 고온에서 구워 단단한 고밀도의 연료를 만든다. 그래서 ‘도자기 연료’라고 부른다.

 이 연료는 일정한 밀도와 물질의 미세구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분말의 물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분말 물성을 제어하는 기술이 바로 핵연료의 핵심 노하우다.

 또 중수로와 경수로는 우라늄 농축도가 다르기 때문에 핵연료의 물성이 서로 다르다. 중수로 핵연료는 우라늄 정광(yellow cake)에서 정제과정을 거쳐 최종 분말을 만든다. 이에 반해 경수로 핵연료는 농축된 육불화우라늄(UF6)에서부터 정제과정 없이 여러 공정을 거쳐서 분말을 만든다. 이렇게 분말을 제조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어떤 공정을 선택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선택 기준은 첫째로 전 반응과정을 제어하기 쉬워야 하고, 둘째로 공정이 짧을수록 좋으며(경제성 관련), 셋째로 폐기물이 적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제어가 대단히 쉬운 AUC라는 공정으로 상당 수준의 시스템을 개발했다. 공정의 제어가 쉬운 것은 안전성과 관계되는 품질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에 핵연료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설계와 가공기술 일부를 해외에서 수입할 것을 결정했지만 분말제조인 변환기술을 수입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개발한 공정을 선택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의견은 기술 도입 쪽이 우세했다.

 그 당시 한국원자력연구소장과 핵연료주식회사 사장을 겸직했던 한필순 박사가 설계와 가공기술은 도입하고 변환공정은 우리가 기술 자립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하였다.

 그 결정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다. 비커에서 시작해서 상용화까지 간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 까다로운 핵연료 규격을 잘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 규격이 핵연료 안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팀을 믿고 기술도입을 중단하고 우리의 기술을 사용하겠다는 한필순 박사의 기술자립 의지에 보답하는 뜻에서 80년대 중반 몇 년 동안 수많은 밤을 새워가면서 상용화에 완전히 성공했다.

 당시 그 공정을 도입하면 400억원 이상이 필요했는데, 모든 연구비를 포함해서 120억원에 변환공장을 핵연료주식회사 내에 완성할 수 있었다.

 실험실 비커에서 상용공장까지의 참으로 험난한 길을 경험했고 외국의 기술도입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알았으며, 많은 돈을 들여서 자체 기술개발을 하더라도 결국은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연구개발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인력을 양성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적은 돈으로 기술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 자립을 위한 핵연료 국산화라는 목표가 분명했고, 또 과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회의론에 대한 오기, 팀원들의 수학실력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은 수학공부를 많이 할 것을 권장한다.

 이 지면을 빌어서 긴긴 밤을 새워가면서 고생했던 팀원들과 우리를 믿고 끝까지 우리 기술이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리고 도와준 한필순 박사에게 감사 드린다.

 ischang@kaeri.re.kr

사진; 지난 86년 한국원자력연구소 내 핵연료 재변환시설 기공식에서 열린 시삽식. 왼쪽서 다섯번째가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장, 여섯번째가 장인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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