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경기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세팅(Setting)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팅 시간’이란, 선수들이 최선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경기 전에 선수 개개인에게 보장해준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선수들은 PC에 자신이 사용하는 마우스 드라이버 및 마우스와 키보드 등의 하드웨어를 설치한다. 그밖에 사운드나 윈도 제어판 상에서의 마우스 감도를 체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선수들은 간단한 마우스와 키보드 설치, 그리고 마우스 관련 소프트웨어의 설치만으로 세팅을 끝내고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세팅시간’에 대한 규정은 필요가 없었다. 또 선수에게 100%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경기와 경기 사이, 짤막한 광고방송이 나가는 시간 정도면 세팅은 충분했다.
그런데, 몇몇 민감한 선수들이 완벽한 세팅을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함으로써 상대편 선수와 코칭 스태프, 또 방송관계자와 현장의 관중, 심지어는 시청자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2년 전의 지금은 은퇴한 한 선수가 마우스를 세팅하느라 수십여분을 잡아먹은 사건이었다.
확실히 누가 보기에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반복적인 감도 테스트와, 심지어 볼 마우스의 내부를 청소하는 장면까지 그대로 방송에 나갔고, 기다림에 지친 다수의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건은 ‘2005 에버 스타리그” 16강전에서도 벌어졌다. 한 선수가 오랜 세팅과 테스트를 거친 후 사운드 문제로 PC를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물론 진행측은 방송 스케줄을 변경해가며 PC를 교체해 줬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프로게임계가 아직 미숙한 단계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세팅 시간’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태어난 지 수년이 지난 e스포츠가 아직도 떼지 못한 기저귀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다행히 e스포츠협회에서 대회 장비와 경기 환경을 ‘규격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조만간 모든 대회는 협회에서 제공한 ‘규격 PC’에서 치러지게 된다. 스탠다드 PC가 있으면, 각 프로팀은 그에 맞추어 연습환경을 꾸려야 하고, 선수들의 세팅시간은 대폭 단축될 수 있다. 협회는 이같은 방안을 토대로 대회 규정에 ‘세팅 시간제한’을 포함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대략 5분에서 7분 정도가 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협회의 방침은 보기에 따라서는 퇴보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더이상 프로게임계는 기저귀를 차고 있을 수 없은 상황이다. 앞으로는 선수들 스스로가 바뀐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해설가 next_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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