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통부 관료들의 몸 값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면목이 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서영길 티유미디어 사장이 위성DMB 방송을 시작하면서 던진 말이다. 천신만고의 위기를 넘기면서 서비스에 나선 CEO로서 감회나 각오가 남다를 텐테 의외로 ‘선배 타령’이다. 물론 ‘후배들’이란 정보통신부의 현직 관료들이다. 그의 말은 기업인으로 변신한 전직 고위관료들이 갖는 부담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새로 맡은 기업 업무에서도 성공해야 한다. 아울러 자신의 역할을 통해 후배 관료들의 자존심을 지켜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무원들의 기업행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정치권 진입도 예사로운 일이다. 산하 기관장이 고작이었던 과거와는 너무 달라졌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영입하는 집단별로 몸값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대략 정치권은 상종가에, 기업은 보합세에, 산하 기관이나 협단체는 하락세에 거래한다.

 정통부 장차관을 지낸 인물이라면 정치적 상품성이 매우 뛰어나다. 각료 출신이라는 중량감에다 IT한국을 진두지휘한 경력은 매력적이다. 디지털 시대, 국민 정서에 파고들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강봉균·남궁석·안병엽·변재일씨 등이 대표적이다. 김효석 의원처럼 KISDI 원장 경험자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본인이 정치권을 두드린 것이 아니라 ‘러브 콜’을 받은 경우다. 대미는 진대제 장관이 장식한다는 설이 많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진 장관은 어느새 ‘정치인(?)’ 대접을 받고 있다. 여당의 서울시장 혹은 경기도지사 후보감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대중적 인기와 함께 아날로그 세상에 디지털 인재는 군계일학이다.

 기업으로 넘어가면 몸값이 좀 더 냉정하게 매겨진다. 실국장 이상은 되어야 중견기업 사장에 해당된다. 대기업의 경우 과장은 상무, 국장은 부사장급으로 굳어졌다. 이들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전직 사례다. ‘갑’의 위치에서 졸지에 ‘을’로 역전되는 것이다. 신분 보장은 고사하고 실적을 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자리가 치워진다. 이들이 피하고 싶은 일 1순위는 ‘후배들 얼굴 다시 보는 것’이다. 전관 예우 차원에서 대관 업무에 ‘동원’된다면 자존심에 상처가 난다. 더구나 요즈음에는 그 같은 약발이 통하지도 않는다. 기업이 영악해서인지 아직은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오히려 전문 경영인으로 입신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적자기업을 흑자로 되돌려 놓기도 하고 이통시장의 히트상품 메이커로 주가를 높이기도 한다. 심지어 증권업계에도 기대주로 통하는 인물이 포진하고 있다.

 산하 기관이나 협단체로 가면 사정은 더욱 팍팍해진다. 과거에는 실국장을 거치면 어느 자리, 차관을 마치면 어떤 곳이라는 불문율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KT는 민영화됐고 주요 기관장은 모조리 공모를 통해 뽑는다. 아무리 고위관료 출신이라 해도 ‘무임승차’는 없다. 민간 후보군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공무원 20∼30년 하고 나와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 분야에서는 ‘하향 지원’이 대세다.

 고위관료들은 국가 자원이다. 고시에 합격하면 10∼20년 동안 국가가 이들을 검증한다. 이들이 정치인이나 민간 기업인에 비해 뒤질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경쟁에 대한 내성과 ‘을’로서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것은 약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환경적 요인이다. 자질은 갖추었으니 본인의 열정과 노력이 성패를 판가름할 것이다. 묻지마 식 전관 예우가 아니라면 새로운 성공기를 쓰고 있는 전직 관료들에겐 박수를 보낼 만하다. 정통부 관료들의 몸값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