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DVD 표준 규격의 통일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표준 규격을 둘러싸고 주도권 쟁탈전을 벌여 왔던 ‘블루레이’ 진영의 대표 격인 소니와 ‘HD-DVD’ 진영의 도시바 측이 ‘제3의 규격’으로 통일하기로 뜻을 모으고 현재 규격 통합 협상에 들어갔다는 보도다.
이미 지난 2월부터 물밑 협상을 진행해 왔고 새로운 통합 규격이 양 진영에서 내세우는 규격의 장점만을 채택한 ‘하이브리드형’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르면 이달 중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규격 통합은 양측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작용되므로 쉽지 않을 수 있으나 합의를 전제로 교섭을 진행하는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
관측대로 하이브리드형으로 규격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소니나 도시바 진영이 각자 개발해 온 기존 기술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 내 실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전세계 가전 및 IT업계를 양분해 왔던 표준 규격 다툼에 마침표를 찍는 한편, 내년부터 차세대 DVD플레이어와 고화질 DVD콘텐츠 등 차세대 DVD 시장이 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콘텐츠 제작자나 소비자들이 각각 다른 규격의 DVD에 맞춰 영화 등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골라야 하는 불편이 없어져 관련 기기와 콘텐츠 보급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양 진영은 70년대 소니와 마쓰시타 간의 그 유명한 VTR 전쟁을 연상시킬 만큼 차세대 DVD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지난 3년간 치열한 세 불리기 싸움을 벌여 왔다. 그저 평행선만 내달릴 것 같았던 양 진영이 이처럼 전격적으로 손을 잡기로 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소프트웨어와 기기를 전세계 시장에 보급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또 규격이 복잡한 차세대 DVD 선택을 놓고 고민하느니 지금의 DVD로 충분하다는 소비자들의 압력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비디오테이프 규격을 둘러싸고 베타와 VHS 방식으로 양분돼 소비자들이 테이프와 기기를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보급에 차질을 빚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최근 디지털 가전기기의 가격하락이 예상외로 빨리 진행되는 것도 한몫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번 소식을 접한 세계 전자업체의 관심은 소니와 도시바의 규격 통합 협상 그 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차세대 DVD 규격 통합 움직임이 앞으로 세계 DVD 시장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전자업체들은 차세대 DVD가 앞으로 고화질 영상의 기록매체로 보편화될 것으로 판단하고 각 진영에 참가해 제품 개발을 서둘러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격 통합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할 경우 단순 제조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블루레이 진영에 참가해 적극적인 표준활동을 전개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만큼 규격 통합 움직임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차세대 DVD 관련 분야는 표준 경쟁의 범위나 양상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제품이 출시되기도 전에 표준 경쟁이 시작됐는가 하면 이번 통합 움직임이 보여주듯 각종 표준 경쟁의 종합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차세대 디지털 제품들의 표준화 경쟁이 기업 생존 차원 문제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
잘 아는 것처럼 지금 세계의 기업들은 자사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삼고자 사활을 걸고 있다. 새로운 분야일수록 더한데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과 협력의 이면에는 언제나 표준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 현실인만큼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표준화를 염두에 두는 등 표준화 전략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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