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바뀌는 조달 제도로 조달청과 산업계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새로운 조달 제도에 따라 적격성 심사를 거쳐 최종 조달 공급업체까지 선정됐지만 아직도 조달 조건 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일부 품목은 지난해 말 조달 공급계약이 모두 끝났지만 아직도 단 한 건의 계약도 이뤄지지 않아 후속 조치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공급자 물품계약=조달청은 지난해 말 지나친 가격 입찰을 방지하고 조달 공급의 기준을 크게 완화하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중인 MAS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기존 복수 조달 체제를 개편해 ‘다수 공급자 물품 계약 제도’로 불리는 MAS는 한 마디로 경쟁 입찰을 통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특정 업체를 선정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다수의 공급자를 선정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모든 업체에 제안서를 제출할 기회를 주고,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업체에 ‘최혜 고객 가격’을 제시하도록 함으로써 시장 경제의 원칙에 더욱 충실해 질 것이라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업체는 분기별로 등록하던 데서 1년에 한 번만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면 된다. 공급 자격도 완화됐다. 실제 올해 초 이뤄진 품목별 조달 적격 심사에서는 80∼90%가 합격점을 받았다. 반면 지난해까지 이뤄진 이전 조달 방식에서는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 중에서 불과 60% 정도만 선정됐다.
◇정부-산업계 팽팽한 신경전=제도 자체의 취지는 정부와 산업계 모두 공감하지만 세부 기준 즉 각론에서는 아직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관련 업계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준으로 정작 제도 자체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당장 계약을 해야 하는데 세부 기준이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돼 불가피한 업무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PC를 예로 들면 산업계의 불만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달 공급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점. 또 하나는 일부 품목이지만 제품 사양이 아직도 이전의 조달 품목 사양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달 품목 대부분이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을 중심으로 사양을 제시한다고 했지만 일부 품목은 여전히 이전 사양을 고집해 업체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조달청 측은 “조달 체제를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이미 검증된 제도를 도입했고 조달만을 위한 품목이 아닌 시중에 유통되는 품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납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고수해 산업계와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대책은 없나=PC와 OA 등은 기업과 소비자가 차지하는 민수 시장 못지않게 조달 등 공공 시장의 비중이 높다. 업계에서는 올해 행망 PC시장 규모를 지난해보다 18.5% 증가한 53만5000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전체 PC시장의 30%를 웃도는 규모다. 프린터·복합기· 복사기 등 OA 품목도 공공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이다. 조달 시장은 안정적인 공급처인 데다 자금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내수가 침체한 상황에서는 산업계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올해는 빠른 경기 회복을 위해 IT 품목에 대한 정부 투자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바뀐 제도의 시행착오가 길어지고 산업계와 갈등이 깊어질수록 산업계는 어려워진다. 총론 못지않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각론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업체에서는 바라고 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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