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IBM의 PC사업 철수’는 PC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퍼스널 컴퓨터= IBM’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할 정도로 PC시장을 수십억달러 규모로 키워 낸 일등공신인 IBM이 PC시장에서 발을 빼기로 한 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시 IDC·가트너 등 주요 시장 조사 기관은 한술 더 떠 “PC시장 잔치는 끝났다”며 “이는 구조 조정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기에 분주했다.
PC는 과연 한물간 비즈니스인가. 따지고 보면 PC가 선보인 지난 20년 동안 PC업계에는 숱한 인수와 합병·제휴·퇴출과 같은 현상이 끊이지 않았다. 불과 3년 전인 지난 2002년 5월에는 HP가 컴팩을 인수한 것과 같은 초대형 ‘빅딜’이 일어났다. PC시장에서 ‘재앙의 분위기’는 이미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5년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누리던 PC시장은 2000년 말부터 급격하게 악화돼 왔다. 이어 2001년, 전년에 비해 출하량이 4% 이상 줄면서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 때부터 PC시장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국내 PC 수요도 2000년 정점을 찍은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결국 IBM 사례는 전통적인 PC시장이 무너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정철 삼보컴퓨터 부회장은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범람하고 초고속 네트워크, 인터넷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소비자가 왜 PC를 찾고 있는지 거꾸로 반문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PC의 존재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컨버전스’가 자리잡고 있다. 소비자는 과거와 달리 PC 성능보다는 다양한 기능을 요구하는 추세다. 업그레이드를 통한 성능 위주의 PC 성장은 한계에 달했다. 고성능의 CPU와 운용체계(OS)가 수요를 유발하고 이것이 더 빠른 CPU, 새로운 OS 개발을 유도하는 형태의 기존 수요 순환 구조가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오히려 소비자는 더 빠른 PC보다는 기능을 확장하고 생활에 더욱 ‘친숙한’ PC를 원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PC업체가 영상 가전(AV)과 컨버전스를 통해 기능의 다양화·멀티미디어화 전략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컨버전스 제품의 출발은 지난 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내 놓은 ‘미디어센터 PC’다. 미디어센터 PC는 컴퓨팅 기술의 강점을 기반으로 멀티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로 PC 기능을 개선한 최초의 성과물이다.
다행히 국내 업체도 이 같은 조류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소음 문제를 해결한 제품을, 삼보컴퓨터도 디자인 측면을 크게 개선해 기존 타워형이 아닌 셋톱박스와 같은 가로형 라운드와 컬러풀한 외관을 채택한 미디어센터PC를 선보였다. LG전자도 미디어센터와 홈네트워크를 결합한 엔터테인먼트PC 등 새로운 개념의 PC를 준비중이다. 노트북PC 시장에서는 오디오· 비디오 기능을 크게 강화한 ‘AV 노트북PC’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만간 홈 엔터테인먼트PC와 AV 노트북PC에 그치지 않고 태블릿PC·스마트 디스플레이와 같은 제품으로 ‘세대 교체’가 진행될 전망이다.
나아가 기술의 컨버전스와 정보기기의 소형·경량화 추세로 PDA처럼 지니고 다니는 ‘휴대형 PC’에서 손목시계와 같은 ‘액세서리형 PC’, 신체에 착용하는 ‘입는 PC’, 신체 내장 PC까지 모두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컨버전스DP 기반을 둔 차세대 PC는 이미 하나, 둘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PC시장의 최종 승부는 누가 먼저 이런 기술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고, 앞서서 시장을 열어 가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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