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정근모 과학기술한림원장(3)

③김재익 박사와 의기투합

개발도상국가들 중 어떤 나라는 과학기술 기초연구를 진흥시키고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면 그 결과가 국가발전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이미 과학기술 기초 기반이 형성되어 있고 기업들의 기술 활동이 활발한 선진국들에겐 이러한 전략이 타당하다. 하지만 과학기술 기반이 전무하거나 취약한 나라에서는 특히 국민총생산이 적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소위 순방향 전략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찍이 국가 과학기술 능력을 키우는데 역방향 전략을 택했다. 즉 기초연구보다는 생산 현장을 중심으로 한 산업기술 개발에 역점을 두고 거기에 정부 투자를 집중했던 것이다.

1966년 제일 먼저 산업기술 연구소인 KIST를 설립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산업분야별 출연연구소들을 설립했던 이유이다. 이러한 역방향의 기술개발 전략의 효율성 확보는 어떻게 원천기술을 현장과 긴밀하게 접속시키고 문제해결 능력을 육성하고 활용하느냐에 좌우된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 KAIST의 STS연구실에서 수행했던 과학기술정책수단(STPI) 연구의 일환으로 1976년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린 STPI 연구회의 주제는 ‘기술자문 및 설계자문 조직(CEDO:Consulting Engineers and Design Organizations)’이었다.

STPI연구회 참가자들은 원천기술을 현장에 접속시키려면 기술자문 능력과 설계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가정 아래 기업들이 자체 설계팀이나 외부의 독립된 기술회사를 어떻게 육성하고 활용하는지에 대해 검토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러한 연계·설계 능력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회의에 참석한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이때 나는 벨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 하나만을 토대로 전자식교환기시스템을 개발한 인도의 전자통신연구소, 초정밀 관측 및 제어기술을 총체적으로 집합시켜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상석유개발시설을 설계하는 엔지니어 인디아(Engineer India, Ltd EIL)의 역량과 성공적 운영을 직접 목격하게 됐다.

그리고 이는 내가 CEDO 능력의 조속한 육성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또한 원자력발전을 통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자력기술 자립을 위해 기획, 자금동원,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구매, 건설, 시운전, 보수 등 전주기적 기술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전문 엔지니어링회사의 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물론 이 회사는 첨단 정보처리와 프로젝트 관리능력을 겸비해야 함도 확신하게 됐다.

나는 인도에서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직접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고 김재익 박사의 집으로 가서 그 당시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었던 에너지 문제와 청색, 백색 전화라는 단어까지 써야했던 통신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자력발전기술회사와 전자식전화교환기 개발팀을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박사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기회가 되는대로 그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저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래 기술한국을 논의한 것은 지금도 녹음테이프로 남아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김재익 박사는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되었고 그는 취임하자마자 원자력발전소기술회사인 KNE(현 KOPEC)의 육성에 착수했으며 TDX 전자교환기 개발에 착수하도록 체신부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김재익 박사와의 다짐 이후 거의 30년, 지금 우리는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과 정보통신 기술 강국이 되었다.

kunmochung@ka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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