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 부족한 신벤처정책

그나마 다행이다. 그간 ‘나 몰라라’로 일관해오던 정부가 새로운 벤처정책을 내놓았다. 워낙 실물 경기가 후퇴일로이니 무언가 처방이 필요하긴 했나보다. 패자부활전을 도입하고 기술 신용 보증을 늘리겠다고 했다. 코스닥과 제3시장의 여건도 유리하게 조성키로 했다. 자금도 화끈하게 밀어준다. 화려하다. 정부의 의지가 읽힌다. 벤처를 살리고 고용도 확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따져 보면 김대중 정부의 벤처정책과 차별적 요인은 거의 없다. 정부 당국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재탕 정책이란 혹평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분위기 반전에는 약효가 기대된다.

 벤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현 정부가 제공했다. 재벌 개혁을 부르짖으며 대기업과 싸움에만 몰두하는 동안 벤처 중소기업은 내팽개쳐졌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경제적 약자의 처지만 위협했다. 벤처를 머니게임으로 오인한 한탕주의 벤처인들도 가세했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서 신뢰가 사라졌다. 전 정부의 정책적 미숙이 드러났는데도 방관만 한 현 정부의 무관심은 역(逆)시너지 효과를 초래했다. 정부의 방치와 벤처 스스로의 허점으로 우리는 중요한 성장동력 하나를 상실했다. 그런 판에 이번 정부 발표는 선언적 의미가 크다. 적어도 정부가 벤처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정책과 시장은 ‘신뢰’가 핵이다. 정부는 벤처를 통해 다시 뛰고 희망을 쏘겠다는 ‘신뢰’를 던져 주었다.

 하지만 무언가 모자란다. 전 정부의 정책적 과오에 대한 정교한 보완 노력이 별로 없다.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책은 ‘자금 지원’에 매몰돼 있다. 물론 자금 지원은 벤처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숨통을 터준다는 점에서 자금은 최우선적 지원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돈 쏟아붓기만으론 역부족이다. 고기를 갖다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급선무다. 시중엔 부동자금만 400조원이다.

 기왕에 시행하려면 경제적 약자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벤처가 좌절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힘의 논리’다. 기껏 제품 개발하고 초기 납품에는 성공하지만 좀 될 듯하면 거래선이 끊긴다. 납품 받는 대기업이 계열사를 동원해 대체하기 때문이다. 퇴직 임직원이 비슷한 회사를 차려 밥그릇을 통째로 갖고 가기도 한다. 협력사란 미명하에 벤처들은 기술까지 제공한 이후의 일이다. 오죽하면 “이 땅에서 장사하고 싶지 않다. 일본으로 가겠다”는 벤처가 나오질 않나, 망할 줄 뻔히 알면서도 대기업 상대로 소송을 감행하는 자폭성 벤처가 줄을 잇는다.

 그뿐인가. 대기업 납품처는 원가 절감을 앞세워 가격 후려치기는 예사다. 초장에 돈 좀 벌어도 갈수록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요구 받는다. 고통 분담이 아닌 힘없는 벤처, 중소기업이 고통을 전담하는 판이다. 소프트웨어 하나 개발해 놓으면 곧바로 복사판이 등장, 정품을 밀어낸다. 

 이러니 벤처의 자생력은 말뿐이다. 살아 남으려면 은행 가서 굽실대고 대기업 찾아가 로비(?)하는 것이 일상사가 됐다. 어찌어찌 운좋게 대박을 터뜨려도 손 벌리는 곳이 하도 많아 본업은 뒷전이 된다.

 벤처에 실질적 도움이 되려면 이런 불공정 관행과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의 몫이 그것이다. 자금 지원이라는 1차 수혈이 이루어졌으면 다음 단계에 대한 정책적 그림이 뒷받침돼야 한다. 벤처 생태계는 왜곡된 경쟁체제, 시장 환경의 변화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제2 벤처붐의 첫 발을 내 디뎠다면 이제는 ‘환경 정화’라는 정책적 대안을 모색할 때다. 2%의 부족함을 채워 달라는 것이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