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이란 동식물의 유전자 세포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인간의 편의에 맞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미 우리 식탁을 점령해 버린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직 인체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실히 규명된 바는 없지만 인체의 호르몬 분비나 면역체계에 이상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갑작스럽게 유전자변형 문제를 꺼내는 이유는 중국 경제를 ‘유전자변형’ 현상에 빗대어 분석하려는 시각의 적합성을 한 번 따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중국 경제는 WTO 가입과 베이징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빠른 속도로 글로벌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IT분야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올해 중국 정부는 외국인에게 빗장을 걸어놓았던 유선통신 분야의 외국인 지분 보유를 허용했으며, 이동통신 사업자의 지분을 최대 49%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달부터는 방송과 프로그램 제작 분야에도 외국 자본 진출을 허용했다. 일부 관영 매체의 경우 지분을 민간 또는 해외에 매각해 해외 증시에 상장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조항으로 원성이 자자했던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부가세 환급 조치도 내년 중 폐지될 전망이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흐름에 순응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내시경을 들이대고 중국 경제의 내밀한 부분까지 관찰하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곳곳에서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고 비합리적인 규제가 버젓이 가해진다. 시장개방과 글로벌 스탠더드로의 이전이란 대명제가 내부의 저항과 이해관계에 밀려 유전적 변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모순적인 정책과 막대한 시장 진입 비용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컨대 통신시장 개방 조치를 취했지만 아직 중국에는 통신분야에 관한 포괄적인 법률이 없다. 그만큼 정부의 입김과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국가 기간산업이니 국가 보안 문제니 하는 등 이유를 내세워 얼마든지 ‘규제의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까지 중국 통신시장에 진출한 업체는 장비업체를 제외하곤 별로 없다. 그것도 자기 브랜드 진출이 아니라 지분 출자 정도에 만족하는 수준이다. 자사 브랜드를 갖고 직접 진출하고 싶은 외국 통신사업자들에 여전히 중국은 ‘그림의 떡’인 것이다.
소프트웨어(SW) 쪽은 어떤가. 최근 베이징시가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사무용 SW와 운용체계를 구입하려던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자국 SW기업들의 반발 탓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 정부는 SW에 자국산·준자국산·외국산이란 꼬리표를 붙여 차별화할 태세다. 외국 기업 입장에선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다.
사실 최근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놀랄 만하다. 중국 PC업체인 레노보의 미국 IBM PC부문 인수, 중국 게임업체인 샨다의 국내 온라인 게임업체 액토즈소프트 인수,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기업들은 ‘세계의 블랙홀’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외국 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자금력과 성장 잠재력을 무기로 굴지의 외국 기업들을 인수, 자사의 취약부분인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차원의 유전자 변형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중국 경제에 ‘유전자 변형 경제’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크게 무리는 아닌 듯하다. 문제는 중국이란 유전자 변형 경제가 세계 경제에 몰고 올 후폭풍을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길수 국제기획부 부장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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