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연초만 해도 부정적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아무리 ‘천하의 김쌍수 부회장’이 소매를 걷어붙인다 해도 LG전자의 ‘통신’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무시로 계속된 인사와 조직개편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접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조직도 어수선했고, 강도 높은 혁신학교 교육은 업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신 바닥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이들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김 부회장이야 그렇다쳐도 정보통신 본사 수뇌부도 대부분 새 인물로 물갈이됐다. 더구나 박문화 사장이나 안승권 단말연구소장(부사장)은 ‘가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전략지원부문은 미주법인에 있던 배재훈 부사장이 들어왔다. 업의 특성이 유난히 강조되는 정보통신과 궁합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희망적 관측도 있었다. 김쌍수·박문화 체제는 ‘1등을 해본 인물’들이란 것이다. 우승해 본 팀이 우승한다는 프로 스포츠의 법칙이 여기서도 통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김 부회장의 성공 신화는 이미 세계적 뉴스다. 박 사장은 히타치와 합작법인 HLDS를 넘버원 광스토리지 업체로 끌어올렸다. 안 부사장은 AV 쪽에서 날리던 인물이다. 배 부사장은 미국시장 CDMA 1등의 주역이었다. 면면으로 보면 무언가 ‘대형 사고’가 예상됐다.
1등을 해본 사람들만이 갖는 자기 확신이었을까. “통신은 성격이 다른데 뭐 특단의 조치가 있나”라는 질문에 단골로 돌아온 답이 있다. “물건 파는 것은 똑같다. 소비자가 요구하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정성껏 마케팅을 펼치면 된다”는 것이다. 언뜻 무모함과 자신감을 구별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시장과 분석가들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성적표는 시장 평가상 A플러스다.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라는 빅3에 도전하는 카드로 3세대 WCDMA를 뽑아들었다. 고착 구도를 깨기 위해 아예 신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돈 되는 GSM 분야에 약했는데 약점을 강점으로 뒤짚자고 나섰다. 결과는 대박 수준이다. 본 고장 유럽에 진군하더니 이번엔 미국(싱귤러)까지 휩쓸고 있다. 3분기에는 소니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톱5에 진입했다. CDMA는 삼성전자와 글로벌 톱을 다툰다. 덕분에 지멘스(4위)와 모토로라(3위)도 사정권에 들었다.
아킬레스건이던 이익률도 계속 향상됐다. 연초 3% 수준에서 출발해 2분기 6.5%, 3분기에는 9.3%까지 올랐다. 외형과 실속 모두 거침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LG의 약진 이면에는 전략적 판단이 돋보인다. 올해는 노키아의 저가 정책으로 프리미엄 제품의 상징인 삼성마저 가격정책을 고민했다. 중저가 보급형이 중심이었던 LG가 기존 스탠스를 유지했다면 점유율은 고사하고 이익 보장도 불투명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LG는 역으로 갔다. 절대강자가 없는 시장에 주목하고 이를 개척한 것이다. 장사가 잘 되니 차세대 연구개발에도 한층 탄력을 받았다.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서도 세계 최초 기술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승부는 이제부터다. 김쌍수·박문화 체제는 올해 최강의 돌파력으로 위기를 반전시켰을 뿐이다. 노키아는 물론 삼성전자가 3세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록 선점 효과를 확보했다 해도 버거운 상대다. 내년에는 이들과 진짜 승부가 불가피하다. “아직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LG 경영진이 들고나올 내년 전략이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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