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기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 기자는 “중국의 샨다네트워크가 한국의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별 동요 없이 “아, 결국 그렇게 됐군요”라고 대답하자 기자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샨다의 한국 개발업체 인수는 예측가능했던 일로 문제는 단지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게임산업은 성장기를 넘어 성장이 둔화되는 성숙기 직전에 도달해 있다. 주요 게임업체들의 올 3분기 실적이 크게 악화된 것은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라, 이런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향후 국내 게임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중국과 일본의 게임업체들이 게임개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미국 업체가 최근 선보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가 한국에서 성공한다면 미국기업들은 아시아시장에서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듯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신의 최대수익을 실현하고 시장을 ‘탈출’하는 대주주가 있다면 그는 ‘머리좋은’ 사람으로 칭찬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30%나 할증된 가격(약 900억원)에 지분을 매각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굳이 게임산업에 대한 사명감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을 고수할 도덕적 의무 역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인가.
‘일파만파’라는 말이 있다. 작은 파도 하나가 만 개의 파도를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샨다의 액토즈 인수는 만파를 부르는 일파가 될 수 있다. 게임의 소스코드와 서버 및 운영 기술의 전수는 물론 가까운 장래 중국산 게임이 저가로 동남아 시장에 들어올 때 한국게임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샨다의 액토즈 인수 건에서 지적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샨다의 국내 게임업체 인수가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게임업계나 정부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준비 없이 사건을 맞이하는 것이 한국인의 ‘습관’이라고는 하나, 이번 일은 그렇게 여기고 넘어가기엔 너무 심각하다.
한국 게임업체는 대주주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예컨대 엔씨소프트의 경우 김택진 사장이 주식을 양도할 의사만 있으면 어느 회사든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게다가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데다 미국과 일본의 게임사에 비해 시가 총액이 작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더욱 취약하다. 일본의 코에이가 9000억원, 남코는 1조6000억원에 각각 경영권 인수가 가능하다고 하니, 샨다가 액토즈 경영권 장악에 들인 1000억원은 너무나 싸다.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세계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제대로 된 게임업체는 10여개사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에서 외국 회사가 한국의 메이저 게임사 다섯곳 정도만 인수하면, 그것도 싸게 인수하면 한국 온라인게임산업의 절반은 사라지는 셈이다.
현재 중국게임업체뿐 아니라 미국의 게임포털들도 한국 게임업체에 대한 투자를 타진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1년여 동안 아무런 실제적인 준비가 없었고, 이번 액토즈 인수 건이 터지자 허둥지둥하고 있다.
진정으로 한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온라인게임이 ‘5000년 역사상 3대 발명품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설픈 게임산업진흥책보다는 한국게임업체의 경쟁우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을 분석하고 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향후 또 다시 기자가 연구실로 전화를 걸 때 “아,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라는 자조적인 대답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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