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다. 알면서 안 하는 것인가, 아니면 몰라서 못하는 것인가. 정말 그게 궁금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은 철든 아이들도 안다. 이는 대화의 기본이다. 우리 조상은 자식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남 듣기 싫은 말은 하지 마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온다. 욕설이 가면 주먹이 온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 국회를 보면 이 경구를 아는 의원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면서도 고운 말을 하지 않고 막말을 했다면 그는 현자가 아니다.
흔히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한다. 그런 국회가 민의는 팽개쳐 두고 대정부 질의 기간 내내 막말 수준의 저질공방만 벌였다면 지탄받을 일이다. 16일 막을 내린 대정부 질의 모습이다. 가는 말이 막말이니 오는 말도 막말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경우의 해답을 조상이 제시한 바 있다.
중국 전국시대 소진과 정의를 보자. 세 치 혀로 백만대군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각기 합종책과 연횡책을 제시해 한 시대를 쥐락펴락했다. 말의 위력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우리 국회가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누워서 침 뱉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짜증과 불신, 정치혐오감만 여의도에 쌓고 있다. 현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 통합하고 타협할 생각은 않고 갈등과 대립만 일삼고 있다.
17대 국회는 구태 청산과 새 정치를 내세우면서 출범했다. 상생과 화합을 약속하며 양당 대표가 만나 협약서까지 교환했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전자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고 디지털 정당을 표방했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건망증이 심한 건가. 하지만 국민은 이를 잊지 않고 있다. 당사자들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지금 국회는 상생과 화합의 장인가. 미워하면서 닮는다더니 빈말이 아니다. 구태를 답습하기에 하는 말이다. 과거 못지않게 막말과 감정싸움이 심하다. 대정부 질의에서도 질의는 없고 연설만 있다. 급기야 대정부 질의 무용론까지 나왔다. 정치가 사회활동의 결정체고 타협과 조정의 장이라면 급한 현안부터 하나씩 풀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게 경제회생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지혜를 모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우리 정치와 경제, 사회 어느 분야 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다. 모두 헝클어진 명주 실타래 같다. 경제 상황은 위기를 맞고 있다. 후발국의 추격은 거세고 선진국의 견제벽은 더욱 견고해진다. 실업난에다 기술 유출, 지적분쟁, 노사갈등이 잇따라 터진다. 이제는 환율추락이라는 짐까지 더 늘었다. 이를 극복하려면 IT 뉴딜정책과 신성장동력, 기초기술 육성, 수출 확대 등의 정책을 제때 추진해야 한다.
상위별로 사회 갈등과 경제 회생을 위한 각종 법안을 심사해 처리해야 한다. 의견 결집과 대안 제시가 없다면 문제를 풀 수 없다. 그 수단이 ‘말’이다. 정교하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우호적이고 정감 어린 말이 타협과 통합을 이끌어낸다.
정승 황희는 평생 부드럽고 절제된 말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어느 촌로가 자신이 부리는 소의 마음을 헤아려 말을 하는 것을 본 후부터라고 한다. 촌로가 짐승한테도 말을 가려 했다니 언어품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관계는 더 말할 것이 없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아무리 선인이라도 입이 험하면 뒷마당의 악취 나는 하수구와 같다.’ 인간에게 입은 하나다. 반면에 귀는 두 개다. 이는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말이 살맛 나고 향기 나는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경제도 살린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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