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정보통신문화가 건강한 나라

지인들을 만나다 보면 ‘문화가 뭐냐’는 거창한 질문에 맞닥뜨리곤 한다. 아마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것을 염두에 둔 질문이리라. 처음엔 ‘문화? 먹고 사는 모든 일’이라며 우문현답으로 슬쩍 비켜가곤 했다. 그런데 질문 횟수가 늘수록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분명 ‘문화란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는 사전적인 의미의 답을 구한 게 아닐 터이다.

 따지고 보면 ‘문화’라는 단어만큼 생활에 두루 쓰이는 말도 없을 듯하다. 기업문화·대중문화·여행문화·소비문화는 물론, 술 마시는 자리에까지 문화라는 말을 붙인다. 모든 말에 ‘문화’를 슬쩍 갖다 붙이니 금세 그럴 듯해진다.

 정보통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통신문화·인터넷 문화·온라인 문화·네티즌 문화 같은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보통신 쪽 문화가 영 말이 아니다.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테러, 게임·채팅·음란물로 대표되는 컴퓨터 중독, 인터넷 언어의 파괴, 불법복제, 스팸메일, 해킹 등 불법적이고 부정적인 단어가 넘쳐난다.

 한 마디로 인터넷이 모든 사회 문제를 옮겨놓은 축소판으로 변한 듯하다. 특히 청소년 일탈 사건의 저변에는 인터넷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청소년 인터넷 중독 치료센터를 열고 상담해온 한 청년의사는 고대 로마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외친 것에 빗대어 “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는 인터넷으로 이어져 있다”고 선언했을까.

 그가 전하는 게임 중독에 빠진 청소년을 둔 어머니와의 상담 사례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게임 시간이 점점 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학교 친구들과 하더니 나중에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렸고 낮밤이 바뀌더군요. 아침에 매번 지각하고 깨우기가 힘들어 골치가 너무 아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안 가겠답니다. 그러기를 몇번, 아예 자퇴하겠다더군요. 방안에 틀어박혀 꿈쩍도 안하고. 강제로라도 학교에 보내려 했더니 가재도구를 부수고, 식칼로 위협하고….”

 지인들의 질문에는 이처럼 일그러진 정보통신문화에 대한 우려와 그 해결책을 듣고자 하는 뜻이 함께 담겨 있었으리라.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이러한 역기능들을 순화하는 일을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은 담가야 하듯이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재단은 미력하나마 정보화의 역기능은 순화하고 순기능은 강화해 건강한 정보통신 문화를 창조하는 공익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해 왔다. 특히 올해는 ‘인터넷 중독 방지’를 테마로 선정해 집중적인 사업을 펼쳤다.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인터넷 중독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각계 전문가를 초빙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인터넷 중독 방지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또 여기에서 도출된 대책을 가지고 전국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중독 방지 교육을 하고 있다. 조사결과 하루 평균 인터넷을 3시간 이상 이용하며 가정에서 컴퓨터를 혼자 사용하는 청소년은 게임·채팅·음란물 등에 의한 중독 증상이 심각했다. 스팸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은 가정의 인터넷 음란물 접촉 빈도(47.3%)는 설치한 가정의 접촉 빈도(23.6%)보다 두배 가까이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가정에서 부모가 컴퓨터를 거실로 옮기고,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화란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정보통신 문화를 가꾸는 일은 맑은 공기, 푸르른 자연 환경을 가꾸는 일과 똑같다. 매연이나 오폐수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할 일이 아니다. ‘정보통신 문화가 건강한 나라 만들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정태원 KT문화재단 이사장 ctwon@kt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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