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기술영향평가 제자리 찾기

우리나라에서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는 아직 생소한 단어로 첫 평가가 작년에야 이뤄졌다.

 일반에 많이 알려진 ‘평가’의 종류로는 대형 토목공사에 앞서 수행하는 환경영향평가와 도심 대형 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교통영향평가가 있다. 교육영향평가,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평가 등까지 하면 한 손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신기술 개발에 따른 긍정적 또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 미리 알아보는 것이 바로 기술영향평가다. 유럽 쪽에선 신기술로부터 파생되는 우려할 만한 점과 사회적 시사점에 무게를 두는데 철학적인 측면이 있어 ‘담론형’이라 불린다.

 미국에서는 우려점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정책적으로 규제할 것인지를 다루기에 ‘방법론형’으로 불린다.

 한 마디로 기술영향평가는 신기술 개발에 따른 긍정적 효과인 경제적 이익·기술적 진보·파급효과·경쟁력 등과 부정적 효과·악용·빈부격차·소외·인권문제를 종합, 예측해 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 전반의 기술에 대한 지적인 이해뿐 아니라 기술 개발의 필요성과 당위성, 그리고 위험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다. 종종 논란을 일으키는 환경영향평가의 전례에서 볼 수 있듯 기술영향평가에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시각차, 연구 개발자를 비롯한 각종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형성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년에 걸친 사전검토와 관계 법령 정비를 끝내고 지난해 봄 최초의 기술영향평가 위원회가 조직됐다.

 첫 주제는 ‘나노-바이오-정보기술(NBIT) 융합기술’이었다. 그러나 뜬구름 잡는 느낌의 미래적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첨예한 이해관계에서 한발짝 물러서려는 시도로 비쳐져 아쉬움을 남겼다. 작년 말 평가는 종료되었으나 보고서는 네 달이나 지나 발간됐다.

 기술영향평가위원회는 과학기술분과·산업경제분과·사회문화분과로 나뉘어 있었다. 당시 어떤 평가 위원은 첫 평가 작업을 이렇게 평했다.

 NBIT는 꿈의 기술이기도 하며 인류를 멸망시킬 악마의 기술이기도 하다. 또 생명연장, 자연재해 사전감지, 오염 감소, 식량 해결, 고부가가치 신산업 창출과 고용 증가 등 장밋빛 전망이 있는 반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강화, 대량실업 발생, 군사기술로의 악용, 환경 및 인체위해성, 빈부격차로 인한 치료 차별, 인식론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NBIT에 대한 평가 결과에서는 아주 상반된 내용이 도출됐다.

 이 내용은 엄연히 법에 의거해 국가기관이 수행한 영향평가 보고서에 쓰인 것이다. 명색이 기술영향평가인데 노골적으로 반 과학적인 비판, 비과학적 오개념에 근거를 둔 비판까지 나오는 것은 지나친 선명성 과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술영향평가는 기술이 사회를 향해 연 창으로 소통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투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에 대해 반드시 애정이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기술적인 면은 이해할 필요 없다는 태도는 지양돼야 한다.

 발목 잡기가 좋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공상 과학 팬터지’도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영향평가에 객관적·중립적인 과학기술인, 과학기술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기술과 사회의 중간자 역할, 기술개발의 헤게모니가 국가권력과 거대 자본에서 국민에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완충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공계 위기 속에서 과학기술인들이 실험과 연구에 매진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왕따’가 돼 사회적 참여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많다. 과학기술 현장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위해성과 통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현장 과학기술인들은 훈수조차 하지 않으니 한탄할 노릇이다. 차기 기술영향평가에는 과학기술인들이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인의 의무이자 사회적 책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상욱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spark@scie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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