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천고마비

 태풍이 온다더니 일본으로 비켜갔고 대신 한반도엔 맑고 푸른 하늘과 따가운 햇살이 자리잡았다. 열대야에 시달리던 게 엊그제인데 며칠 새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걸 보니 벌써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 모양이다.

 당나라 초기 시인인 두심언의 시에서 나온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다. 두심언은 이태백과 함께 당시를 대표하는 인물인 두보의 조부이기도 하다.

 ‘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이 떨어지고(雲淨妖星落)/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찌는구나(秋高塞馬肥)/말안장에 의지하여 영웅의 칼을 움직이고(馬鞍雄劍動)/붓을 휘두르니 격문이 날아온다(搖筆羽書飛)’

 두심언은 당시 참군으로 북녘에 가 있는 친구 소미도가 하루빨리 장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이 시를 지었다. ‘추고새마비’라는 구절은 당군의 승리를 가을날에 비유한 것이다.

 또 ‘한서’ ‘흉노전’에 보면 이 말은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유목민족 흉노가 활동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해마다 가을철에 중국 북방 변경의 농경지대를 약탈해 기나긴 겨울 동안의 양식을 마련하기 때문에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의 침입이 있을지 몰라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추고마비’는 아주 좋은 가을 날씨와 누구나 활동하기 좋은 계절을 이르는 말로 변화했고 우리나라에선 ‘천고마비’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말도 풀 먹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철이 가까워지면 본능적으로 살을 찌우고 산짐승들도 풍요로운 가을철에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에서 에어컨, PDP TV, 프로젝션 TV 등 24개 품목의 특별소비세를 폐지하는 등 내수 진작을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또 정부 주선으로 금융권과 대기업, 그리고 중소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 간 1조원 수급기업펀드 조성 MOU도 교환하는 등 대·중소기업의 협력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늘 그렇듯이 모든 기업들이 만족스러워하지는 못하지만 추운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선 정부가 간간이 풀어놓는 선물 보따리를 100% 활용해 제 것으로 만드는 재주도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주문정·경제과학부 차장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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