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농어촌 디지털교환기 개발사업
1983년 여름, 체신부차관과 한국전기통신공사(KTA) 기술부사장이 만나자고 했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KTRI, 현 전자통신연구원)에 맡겨 개발하는 농어촌 디지털교환기(TDX)에 대해 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연구소장이 장관으로, 청와대에서 TDX개발을 지원하던 비서관이 차관으로, 연구소 관련 부장이 KTA기술부사장으로 그리고 삼성의 교환기부문 임원이 연구소 TDX개발단장으로 왔는데 말이다.
KTA 자문위원이 되자 연구소는 보고서를 잔뜩 보내왔다. 이를 정독하며 TDX관련 기관과 사람들을 만나 실상을 파악했다. 보고서와 실물을 대조하니 일치하지 않았다. 당시의 국설교환기들이 최소한 16비트 프로세서를 내장한 데 비해 TDX는 8비트 프로세서를 전용한 점, 가입자 용량을 구조상 최대 1만240회선으로 할 수 있음에도 9600회선으로 한 점, 모니터에 구태의연하게 텔레타이프 단말을 쓴 점을 보고 제대로 된 교환기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8비트 프로세서를 전용해서는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구소는 40년 운용에 2시간 이하의 시스템 다운을 보장해야 하는 국설교환기의 신뢰도를 실현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했다. 운용자가 요구하는 시스템의 신뢰성, 가용성, 보전성, 내구성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원들을 정예화하고 사업관리 및 품질보증 기법을 학습해야 했다.
체신부는 장·차관이 연구소를 번갈아 방문하며 독려했다. 그러나 전시장만 화려해지고 보고서만 쌓였다. 업체들은 AXE-10(스웨덴)으로 TDX를 밀어내고 5ESS(미국)와 S1240(벨기에)을 1ESS(미국)와 M10CN(벨기에)의 후속으로 도입할 속셈이었다. 그대로 두면 TDX는 유산되거나, 태어나도 고아가 될 운명이었다. TDX를 순산하려면 생모(제조업체)와 양모(운용업체)의 정신과 건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83년 말, KTA사장이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다. 그래서 사장 직속으로 TDX사업단과 품질보증단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내가 KTA에 자리를 잡자 기술부사장은 자리가 없어져 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KTA는 M10CN의 과금 오류 등 현안 문제 때문에 TDX개발 같은 것엔 무심했다. 과금 소프트웨어에 원천적인 결함이 있는데다 기계식을 다루던 사람들이 운용하다 보니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또한 업체들 등쌀에 물량을 안배하다 보니 대용량(1ESS)을 설치해야 할 곳에 소용량(M10CN)을 설치하게 되어 통화가 폭주하는 시간엔 전화불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교환기업체들은 KTA의 용역을 받아 디지털방식은 시기상조니 아날로그방식을 계속 구매하라는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
TDX사업은 무력과 무심과의 싸움이었다. 이 전쟁에 승리하려면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임전태세를 강화해야 했다. KTA는 시설공법, 품질보증, 운용교육, 선로정비, 망(網)최적화 등 교환기 운용환경을 혁신했다. 연구소는 운용체계 개발에 전념했다. KTA, 금성, 삼성, 오텔코, 대우 등 업체들은 연구개발 및 품질보증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juseo@kita.net
지난달 23일 6회에 이어 오늘 7회를 시작으로 7회분이 추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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