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성민 엠텍비젼 사장(4)

(4)사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은 월급날

 모든 기업들이 그렇듯이 엠텍비젼도 초기에는 자금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자본금 5000만원은 기술개발과 영업까지 해야 하는 실정에서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한달 주차비 10만원이 아까워 사무실 멀리 있는 공사장 옆에 주차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급한 일이 있어 속도위반이라도 하면 어김 없이 날아드는 범칙금 고지서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이 시기 우리는 국가 정책 과제로 사업 비용을 충당하며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 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제품 개발로 밤샘 작업을 할 때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고,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업 초기 월급날 직원들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챙겨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가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복지 혜택도, 아주 좋은 업무 환경도 아니었다. 단지 직원들과의 최소한의 약속이 월급날은 어기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우리들은 하나 둘씩 성과들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리는 2000년 4월 투자자를 처음으로 유치하게 되었다. 1년 3개월 만에 투자자를 유치하게 된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며, 내세울만한 제품도 없던 그때 우리의 기술만을 보고 투자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뛸 듯이 기뻤다.

 그 자금을 토대로 휴대기기에 필요한 IC개발이 가능했으며, 1년 후 모토로라를 거쳐 삼성전기와 휴대폰용 외장형 카메라에 적용될 IC 개발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개발된 IC는 휴대기기용 카메라 기술로 KT마크를 획득했으며, 삼성전기와 1년여의 제품 개발로 우리는 결국 휴대폰용 외장 카메라를 국내 최초로 만들 수 있었다. 직원들과 부여안고 ‘고생 끝’이라는 세 글자만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외장형 카메라는 그리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초기 계획의 5% 정도의 수요만이 결과로 나올 뿐이었다.

 우리의 첫번째 제품이었던 MP3플레이어 외장형 카메라와 두번째 제품이었던 휴대폰용 외장형 카메라가 모두 시장의 호응을 받지 못하자 우리는 한동안 아무것도 손을 댈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은 우리만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 투자자들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로 인해 회사 사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초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언제나 돈과 시간에 쫒겼으며, 우리가 살길은 연구개발 밖에 없었다.

 이 즈음에 나와 우리 직원 모두에게 희망적인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2001년 큐리텔에서 내장형 카메라에 대한 개발 제안이 들어 온 것이다. 이 때는 우리 또한 외장이 안 된다면 내장 밖에 없다는 생각에 기술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결국 2002년 국내 최초로 내장형 카메라폰이 세상에 나왔고, 33만 화소급이었던 당시의 카메라폰은 현재 300만 화소급까지 진화를 거듭해왔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