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IT와 신고통시스템

 ‘이렇게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견디느니 차라리 차를 버리자.’

 7월 1일 시작돼 시민을 고통으로 몰아간 서울시 신교통시스템의 혼돈상황은 90년대말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폴링다운의 첫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시가 교통체증을 덜고자 만든 야심작인 신교통시스템은 영화처럼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를 만들었지만 신교통시스템의 이미 시나리오는 멈출 수 없다.

 서울시의 신교통시스템 운용계획은 시속 20km미만의 주행속도를 보이는 서울시를 활력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한 고뇌의 결단임이 틀림 없을 것이다.

 이번 신교통시스템의 주인공인 지하철·버스 운영 환승체계 개편을 통해 최소한 대중교통시스템이라도 편하고 빠르게 만들자는 시의 고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권역조정을 위해 버스운수사업자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들인 시의 노력도 이 시장이 말한 그대로다.

 하지만 시민들이 신교통시스템을 ‘신고통시스템’으로 명명한 마당이고 보면 서울시가 숱한 공을 들인 만큼 아쉬움도 크다.

 신교통시스템은 교통전문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첨단대중교통시스템(APTS)이다. 서울시는 물론 인근도시까지 아우르는 시스템이다. 서울시 지하철은 물론 성남·인천·수원 등 4개 도시의 전철과 버스 및 서울시 마을버스를 포괄한 총체적 시스템 구상이었다.

 신교통시스템의 실체가 APTS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절름발이 첨단시스템이며,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광역·지방자치단체 간 협조조정에도 실패한 미숙한 행정의 표본이 됐다. 절름발이 신교통시스템 운행이 가능하게된 데는 나름대로의 악역들이 있다.

 신교통시스템 구축과정에서 시가 간과한 최대 실수는 IT 관련분야를 너무 우습게 봤다는 점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해서 일거에 많은 신호를 보냈을 때 ‘T머니’ 카드와 인식시스템 간 인식오류 가능성을 예견하고 대처했었어야 했다. 서울시 교통담당 핵심관계자들의 대부분이 교통공학전문가여서 IT분야에 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업자들이 운용상 차질 가능성 경고에 ‘문제없다’고 외쳐온 시 당국의 자세는 분명 문제가 있다. 서울시가 일부 마을버스회사와 단말기 교체문제를 매끄럽지 못하게 처리해 법정싸움으로까지 만든 점도 비슷한 범주다.

 다른 문제는 아날로그적 영역에 속한다. 시뮬레이션을 거치지 못한 도로망의 혼선과 함께 서울인근 지자체와 신교통시스템 개통날까지도 행정적 협조 및 조정 절차를 매듭짓지 못한 책임은 결국 시당국이 져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신고통시스템’을 구축한 악역(?)을 맡은 이들도 나름대로 고생해 온 만큼 신교통시스템의 혼란에 대해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고 항변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서울시장이 일요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에게 사과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신고통시스템’의 악역들을 어떻게 주역으로 만들어 그들의 기를 살려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신교통시스템은 혼란과 함께 교훈도 주었다. 굳이 따져 보자면 이 시장과 서울시 교통최고책임자가 새로이 인식해야 할 점, 즉 디지털시대의 행정에 IT가 미치는 역할을 보여준 점일 것이다.

 지난 94년을 전후해 국가지능형교통시스템(ITS) 구축계획이 만들어졌고 그 이후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통공학 전문가들이 만든 아날로그 국가 ITS구축계획이 얼마나 많은 IT전문가들을 좌절시켰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재구 경제과학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