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단형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6)

2000년 10월 17일 LG-EDS의 CTO에서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 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 강국임을 자부하면서도 정보통신 인프라에 비해 소프트웨어 분야가 크게 취약하다. 그래서 정부는 21세기 지식사회에서 소프트웨어를 전략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기 위해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시장·인력·정책면에서 균형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특히 진흥원이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조직관리·인적구성·전문지식·예산·사기진작·노사문제 등 내부문제와 대외적으로는 국내 산업계가 신뢰하는 기관, 해외 파트너들이 함께 협력하고 싶어하는 기관, 정부(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 감사원 등)와 국회가 필요로 하는 기관으로서의 위상확립 등 많은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비록 내 연봉이 삼분의 일로 줄게 되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2010 소프트웨어 강국 코리아’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국산 소프트웨어 수출확대,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육성, IT인력 양성, 디지털 콘텐츠 경쟁력 강화, 소프트웨어 프로세스 개선 등을 주축으로 하는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진흥원 동료·산업계·학계·연구소·정부와 함께 준비했다. 그러나 2010년 세계 5-10위권의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수반돼야 하고, 소프트웨어 수출도 2010년까지 매년 두 배 정도로 신장돼야 했다. 또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과 아울러, 이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우수한 IT인력의 지속적 공급이 중요했다.

우선 내가 책임을 맡은 KIPA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연간 국내 소프트웨어 수출액 100% 신장을 위한 목표관리에 나섰다. KIPA가 운영하던 SW 벤처기업 창업 보육시설을 20개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했다. 또한 KIPA는 마케팅·기술협력·해외진출 지원에 치중하고 IT 인재육성을 위한 IT 연구센터(ITRC)와 국내외 인턴십을 강화하는 것 등이 변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었다. 일례로 KIPA에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공개모집을 했는데 150명의 응모자 중 채용할 만한 인재가 한 사람도 없었다. KIPA의 실적도 미미하고, 역할의 중요성이 알려져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SW지원센터 소속직원들은 노조를 새로 결성했으며,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은 SW 지원센터 이관에 비협조적이었다. 국회에서는 SW 수출액 100% 신장 목표에 대해 왜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잡았느냐고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나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문제점들을 해소시켜 나갔다. 나에게는 우리나라가 2010년에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당시에는(현재까지도) 미국, 영국, 독일, 인도, 이스라엘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국책 차원에서 육성하는 나라들은 캐나다, 호주, 프랑스, 아일랜드, 스페인, 핀란드, 항거리, 브라질, 중국 등 많은 나라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세계시장 진입 시점(Time to Market)을 놓치게 되면 향후 매우 힘겨운 경쟁을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danlee@i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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