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통부의 고민

 정통부의 고민이 깊다. 정책 환경이 예전같지 않아서다. 우선 사업자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논리를 앞세워 투자를 꺼린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었던 얘기다. 먹이사슬 하단에 위치한 장비업체들은 그들대로 죽겠다고 난리다. 수요가 일게 투자를 유도해달라고 정통부를 압박한다. 점점 커지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도 큰 부담이다. 통신요금을 내리라고 아우성이다. 투자부진이 극에 달한 상태여서 무턱대고 사업자들만 감싸기도 어려운 처지다. 넉넉한(?) 요금이 기업들의 투자여력를 확보해준다는 그간의 논리가 먹혀들 분위기가 아니다.

 문제는 투자다. 투자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겪는 부작용이 지금 우리나라 IT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럴 바에 삼성이든 외자든 신규세력을 끌어들여 경쟁체제를 더 강화해야 할 것 같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독점체제 분위기여서인지 몰라도 신규서비스 개발을 위한 투자를 너무 소홀히 한다.” (정책담당자)

 “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WCDMA에는 투자를 강제하고 정작 욕심나는 휴대인터넷 분야엔 허가를 안 내주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시장경제에 맞는 투자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통신사업자)

 이는 투자문제에 대한 양측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통신산업은 정통부의 산업육성 논리에 힘입어 급성장을 해왔다. 산업발전을 독려함으로써 국내 경제의 돈줄인 업계의 투자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부가가치 창출, 고용확대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든다는 게 핵심논리였다. 통신요금만 해도 그렇다. 정통부는 당장 소비자들의 자투리 동전을 줄여줘 봐야 체감 실익도 적은 데 비해, 사업자들이 받는 충격은 수천억·수조원 단위에 육박해 오히려 산업을 퇴보시킨다는 주장이다. 지난 수년간 매년 수조원대에 달했던 통신사업자들의 투자가 전후방 연관산업에 젖줄 역할을 하면서 이런 명분은 더욱 힘을 얻었다.

 하지만 통신인프라가 포화조짐을 보이자 선순환의 고리도 흔들렸다. 시장이 성장엔진을 잃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여기 저기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됐다. 지배적 사업자는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규제에만 치중한다면서 불만이고, 후발사업자들은 또 규제가 약하다고 불평한다. 소비자들 또한 요금인하 등 사소한 혜택은 물론이고 투자로 인한 고용창출 등의 실익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난리다. 요즘 같아선 마치 모든 게 정통부의 탓인것 같다.

 “갈수록 심화되는 통상마찰탓에 지금은 정부가 대놓고 자금을 지원하기도, 심지어 기술표준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의 힘이 과연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다”는 정책담당자의 말은 우리가 직면한 정책환경의 변화를 잘 설명해준다.

 이 점이 바로 사업자들이 정통부의 고민을 즐겨서만도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은 국가자원인 주파수와 시설자원을 독점·소유하고 있는 한, 기본적인 기업의 책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산업적 책무를 맡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유무선 기간사업자들은 선후발을 막론하고 빈약한 시장환경에서 오로지 자사 이익에만 혈안이 된채 모든 정책사안을 아전인수격으로 재단해왔다.

 정통부가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통신시장의 해결사 노릇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론을 정립해야 하듯이 선·후발사업자들도 국가산업 발전의 관점에서 진정한 초심을 찾아야 할 시기다.

 통신산업이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공멸을 피하는 방법은 사업자는 정체된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고, 정부는 이에 걸맞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는 길뿐이다. 정통부가 모처럼 그린 839프로젝트도 예외없다. 투자만이 성공을 담보한다. 투자 없는 청사진은 공허하다.

 <김경묵부국장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