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IT기업 한국지사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매출규모로 전세계 지사 순위 톱 10에 포함돼 있던 한국지사 매출이 지난 2002년부터 계속된 경기침체로 정체 혹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면서 전략시장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지사가 급속한 외형증가에 힘입어 전략지사로 올라서면서 그동안 정책적으로 이루어졌던 한국시장에 대한 각종 지원책도 상대적으로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주요 다국적 IT기업 한국 지사들이 본사로부터 매출압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익 감소에 따라 지사 운영비도 최소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심지어는 매출감소에 대한 본사 차원의 특별감사를 받거나 프로젝트별로 진행결과를 일일이 보고해야 하는 등의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지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HP 본사는 올 하반기에 매출기준에 따라 지사를 구분하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는데 한국지사는 20억달러 이상의 국가를 지칭하는 ‘대형 국가(Large Country)그룹’에서 제외됐다.
한국HP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제품이 다양한 상황에서 국가별 집중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현업 종사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HP 한 임원은 “본사가 이 같은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지사에 대한 차별적인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20억달러 매출에 근접한 중국이 1, 2년 내에 우리와 다른 대접을 받게 될 것이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97년 이후 글로벌 매출기준 톱 10 국가에 꾸준히 포함돼 온 한국오라클은 아직까지는 주요 국가 지사로서 위상이 꺾이지 않았지만 ‘골드 차이나’ ‘에메랄드 인디아’처럼 본사가 분류하는 전략국가 범주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달로 회계연도가 시작된 한국오라클은 공격적인 영업 계획을 세우면서 추락한 위상을 만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 SW기업으로는 국내 시장에 가장 일찍 진출한 한국CA도 본사로부터 100% 성장을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일상 한국CA 사장은 “본사 차원에서 아태시장에 대한 5개년 장기계획을 세울 때 중국이나 인도 성장을 감안해 배려하고 있어 단기적 매출 신장은 물론 향후 변화에 대비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지사장은 “전략국가 선정은 무엇보다 해당 제품에 한글어 지원이나 현지화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에서 타국보다 유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중요하다”며 “어렵긴 하지만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본사에 선투자나 지원을 요구하는 협상력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위기상황 타개를 위한 해법을 제시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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