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규제정책의 해법

예측 불가능한 시계(視界)를 헤매던 통신업계가 일단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느낌이다. 25일 정보통신정책심의위가 SK텔레콤 합병조건에 대해 ‘드디어’ 결정을 내린 탓이다. 물론 심결내용인 SK텔레콤에 대한 제재수준을 놓고 당사자격인 선후발업체들의 불만은 또 다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올 초부터 무려 5개월간 미뤄 온 정책의 불투명성에 대한 불만보다 높을 것 같지는 않다.

 올 초부터 규제당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잘못된 정책보다 더 나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정책’이란 말을 웅변해줬다. ‘식은 감자’로 끝날 수 있었던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던 것도 정책의 불투명성 때문이었다. 규제당국의 모호한 자세가 정책방향은 물론 정책의지까지 의심하게 만들면서 문제를 한층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합병인가조건을 만들었던 정보통신정책심의위가 제손으로 매듭을 풀지 못하고 미적거렸던 것이나 공떠넘기기에 바빴던 정통부의 자세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신중함만은 아니었다. 자칫 뚜렷한 결론을 제시했다가 야기될지 모르는 시장분란의 책임을 피해가겠다는 보신주의 성격으로 비쳐졌다. 결국 시간이 가면서 규제 이슈는 건전한 시장발전이 아닌 서로를 헐뜯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정책당국 또한 고민의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이 역시 정책의 불투명성이 가져온 ‘자업자득’의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문제는 이로 인한 피해가 국내 정보통신업계 모두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서비스, 특히 이동전화 산업은 IT코리아 신화를 일궈냈던 정보통신산업 가치사슬의 최상단에서 전후방 연관산업을 견인해 온 주역이다. 그런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는 외면한 채 포화가입자를 놓고 소모적인 ‘돈(마케팅) 전쟁’에만 골몰했다. 투자실종의 후유증이 국내 IT경제의 풀뿌리인 장비·솔루션·콘텐츠 벤처업체들의 고사위기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이 시점에서 통신규제 정책의 목적을 되짚어봐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본래 통신규제의 지향점은 궁극적으로 국가경제와 소비자에게 광범위한 혜택을 돌려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간 논의돼 온 규제 현안은 본원적인 목적은 뒷전인 채 오로지 사업자들간의 논리 싸움 즉, 절차상의 과정에만 머물러왔다. 규제당국인 정통부나 당사자인 사업자들이 통신규제의 원칙을 상실한 데서 온 결과다.

 앞으로 통신규제 해법은 사업자들이 산업의 신성장동력을 자발적으로 찾도록 유도하는 데 둬야 한다. 국가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제시하고 나아가 생산유발·고용창출 등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전환점을 통신사업자들이 주도적으로 찾도록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우리나라 경제의 주춧돌이자 IT산업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이보다 더 중요한 미션은 없다. 업계 역시 계속해서 자사 이기주의에 함몰돼서는 ‘통신사업자=특혜사업자’라는 태생적 오명을 벗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공은 정통부로 넘어왔다. 민간기업의 결단에 의해 물꼬를 튼 국면전환을 정통부가 다시 원위치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통부가 주창하는 규제와 진흥정책은 투자가 선행되고 이에 따라 산업이 육성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책 하나 하나가 저마다의 아전인수가 불가능하도록 명확하고 분명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 5개월간 얻은 교훈이다. 소모적인 논쟁을 불식시키는 생산적인 정책만이 통신산업의 미래를 담보한다.

<김경묵 부국장대우·IT산업부장 km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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