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사이버 종합건설업’ 시스템통합(SI)산업이 경쟁력 약화와 저부가가치의 악순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향후 1-2년 내에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SI업계 전체가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SI업계 내부에서조차 “이제 SI는 사양산업이다. 빙산에 부딪혀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타이타닉호를 다시 끌어올릴 수 없듯이 큰 덩치만을 자랑해온 SI업체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의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실제로 국내 ‘30대 SI 기업’은 재계 ‘30대 기업 계열사’와 같은 뜻으로도 통한다. 이들은 거센 정보화 바람 속에 폭주하는 계열사 물량만을 갖고도 한때 매출의 70∼80%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수요처를 갖고 있었다. 국내 SI시장은 그만큼 ‘순풍에 돛을 단 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안정적 물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들면서 3∼4년 후 현재의 위치를 고수할 SI업체는 불과 5∼6개사에 불과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지금 돌출된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인수합병 등을 통해 문을 닫을 것이란 게 업계 스스로의 관측이다.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SI업계는 요즘 저가입찰 관행, 생산성 저하, 전문성 부족 등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컨설팅과 아웃소싱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는 외국계 기업들에 돌아가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시스템 구축 또는 관리 등의 분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최저예산과 저가입찰, 그리고 이로 인한 과당경쟁과 부실관행. 국내 SI산업이 안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러나 건설분야에서 부실공사를 막을 뾰족한 대안이 없듯이 SI분야에도 정확한 해답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래서 동종 IT업계에서조차 SI는 사고뭉치이자 내놓은 자식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SI산업의 병폐로 인해 국가 정보화사업 전체가 멍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높다. 이러한 질타는 국내 SI업계가 그동안 보여준 잘못된 관행과 이로 인해 국가 정보인프라 구축의 진정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SI산업은 분명 미래 정보사회의 ‘꽃’이다. IT분야의 종합적인 정보인프라를 제공하는 SI산업의 위상과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선진국과 비교해 기술수준과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수출 유망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우리나라 SI산업은 지난 20년간 해마다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유지하면서 IT산업의 핵심 분야로 자리잡았다. 지난 2002년에 이미 10조원대 시장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SI사업에 일부나마 발을 담그고 있는 기업 수만도 2000개에 달할 만큼 외형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그러나 문제는 채산성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업 형태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방식이다. SI업체들이 경기침체와 맞물려 기업의 ‘존재이유’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SI기업 경영의 후진성은 저가입찰 관행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너도나도 한 건 올리기 식으로 뛰어들다 보니 국내 SI 시장상황은 악화되고 고질적 문제인 ‘고비용·저수익’ 사업구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사업을 수행했지만 이익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납기나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이 생겨 지체상금 물기가 일쑤다. 소속그룹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매출의존도 역시 경쟁력을 약화시켜온 요인으로 지적을 받고 있다.
SI업체들은 스스로 강조해온 ‘선택과 집중’ 전략에서도 실패했다. 시장을 주도하는 3∼4개 대형 업체조차 전문성이나 특장점 없이 종합건설회사처럼 자본력과 기업영향력을 앞세워 온갖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다. 중견·중소 업체 역시 전문 SI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한 채 대기업과의 하청관계에 연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정보시스템 분야의 빠른 기술변화만큼이나 SI업계도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해왔다. 정보시스템 구축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시장변화에 민감한 것이 SI산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I업계가 화려한 변신에 실패한 것은 변화의 폭과 속도의 문제였다.
세계 정보시스템 시장은 이미 ‘컨버전스’와 ‘유비쿼터스’라는 새로운 IT패러다임 속에 그 기본적인 틀을 다시 짜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옹성처럼 느껴지던 IT분야 거대 기업들조차 첨단 아이디어와 기술을 무기로 한 신생 벤처업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덩치 큰 SI산업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속에 최근 SI업계 내부에서도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 이면에는 급변하는 IT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현재와 같은 후진적인 모습으로는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SI업계 스스로의 현실적인 절박함도 깔려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과연 SI업계가 급변하는 정보산업의 패러다임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느냐다. 공정한 경쟁 룰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 핵심 역량도 확보하지 않은 채 실속보다는 덩치로 승부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떠오르는 신규 IT시장에서의 파괴력도 그만큼 반감될 수밖에 없다.
SI산업의 미래는 단일 기업의 존폐를 논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SI는 정보·통신분야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 산업인프라를 떠받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SI산업이 무너지면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정보인프라 구축도 불가능하다’는 책임감과 ‘국내 정보기술(IT)산업의 얼굴이자 맏형’이라는 자부심으로 SI산업은 다시 일어서야 한다. 국내 SI산업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고 이번만큼은 화려한 변신에 성공해야 한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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