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판정 넷피아 사장(4)

(4) 美 리얼네임즈, 300억원에 인수 제안

 1999년 9월 한글인터넷주소 상용화의 성공을 통해 넷피아는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또 한국에서 구축된 모델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길 위에는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1997년 국내에서 한글인터넷주소의 개발이 시작될때 쯤 미국에서도 유사기술을 개발해 1999년경 실리콘밸리에서 상당한 자금을 투자 받은 리얼네임즈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도 거액을 투자받아 총 펀딩 규모만도 약 1500억원에 달했다.

 넷피아와 리얼네임즈는 1999년 이후 APRICOT 등 각종 국제행사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시작했다. 나는 1999년 하반기 미국에 있는 리얼네임즈 본사를 찾아갔다. “미주와 남미권은 리얼네임즈가, 아시아권은 우리가, 아프리카와 유럽은 서로 나누자”는 내용의 ‘천하 3분지계’를 제안했다. 동맹을 통해 세계를 통일하고 세계적 표준을 같이 만들어 시장을 평정하자는 뜻에서였다.

 이에 대해 리얼네임즈는 더 직접적인 제안을 해왔다. 리얼네임즈의 인터내셔날 부문 CEO였던 테드 웨스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약 30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회사인수 제의를 해왔다. 리얼네임즈는 3차례 미팅 후 인수결정을 위한 실사를 요청했고 양측은 변호인 및 전문팀을 구축해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마지막 하나의 걸림돌이 남았다. 리얼네임즈가 인수 조건으로 한글인터넷주소 DB까지 모두 넘겨 달라는 제의를 한 것이다.

 그동안 빚에 시달리는 혹독한 상황에서 300억원은 나에게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기술과 특허권, 한글주소에 대한 운영권까지 넘기고 한글주소 등록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직접 하게 한다면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한글 이름을 인터넷에서 사용하는데 한국에 등록하지 않고 왜 다른 나라에 등록을 해야 하는 거죠?”라고 질문을 하면 나는 과연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많은 갈등을 했다. 언제나 힘들고 괴로울 때 벗이 되어준 아내도 “당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만 그런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니 삶의 참된 가치를 저버리지 말라”고 조심스레 주문했다. 아내는 결혼 후 어려운 회사 살림살이를 맡아보았는데 매일 빚쟁이한데 전화 독촉에 시달리며 하루에도 수차례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그런 아내조차 나에게 돈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할 때는 돈 앞에 고민하며 무력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기 한이 없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당시 리얼네임즈 담당자들은 “당신 평생에 이런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으냐”며 핀잔을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올해 넷피아 매출은 약 200억원을 넘을 것 같다. 내년이면 아마 약 300억∼400억원은 가능 할 것이다. 약 5∼6년 후 그때 듣던 핀잔이 매출로 돌아와 빈손으로 시작한 나에게도 연간 매출 300억원이 넘는 시대가 될 것 같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결단이 힘은 들었지만 틀리지 않았고 매우 가치 있는 결단이었다고 이제는 말하고 싶다. 조언을 해준 아내와 주변의 많은 분들게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판정@넷피아·pjlee@netpia.com

사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터넷 콘퍼런스인 ‘APRICOT(Asia-Pacific Regional Internet Conference on Operational Technologies) 2002’에 자국어인터넷주소 발표를 위해 참가한 이판정 사장(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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