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수다`가 걱정인 사회

양보도 절충도 없는 수다로 국민을 우롱

만화방창, 꽃들이 수다를 떨며 피어나는 계절이다. 얼마 전 ‘꽃들의 수다’를 구경할 요량으로 집 근처 생태공원을 찾은 적이 있다.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조성한 공원이라 자연공부 겸하여 나들이 나온 가족들도 꽤 많아 보였다. 식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서 있는 나무와 풀포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다 말고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옆 벤치에서 중년 부인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무슨 궁금증이 일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부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일상의 수다와 거리가 있는 심각한 이야기라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40대 중반 정도 되는 평범한 주부들이었는데, 한결같은 걱정이 나라살림에 대한 것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던 주부들의 이야기 종착점은 불확실하고 기약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우리 세대야 어릴 때부터 고생하며 살아서 고통에 대한 내성이 있어 견딜 만하다. 남편이 구조조정이다 뭐다 해서 직장에서 나오더라도 어떻게 버틸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자식들이 아닌가. 도대체 우리 자식들은 앞으로 뭘 해먹으며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 한숨만 나온다.” 맞는 말이다. 쓸만한 국내 기업들은 하나같이 보따리를 싸서 기업 활동 환경이 좋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속속 떠나가고 있다. 호들갑 떨고 있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도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한 술 더 떠서 싱크탱크인 R&D센터까지 하나 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러기가족이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식들에게만은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고 싶은 부모 마음에 거액을 들여 해외 유학을 시켰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오면 일할 곳이 없는 것이다. 공장 대신 생겨나는 것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위락시설뿐이니 외국 유학보낸 게 억울(?)해서라도, 아니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모텔 서비스맨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무지렁뱅이 장삼이사와 필부필부까지도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한탄하고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우리는 이미 경제전쟁에서 한 차례 처참한 패전을 당했다. IMF 때의 상흔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고, 후유증으로 인한 심각한 내출혈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마치 관자놀이에 카운터펀치를 맞고 흐느적거리는 권투선수의 모습인 것이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평형감각이 마비되어 부축받지 못하면 스텝을 옮길 수 없는 그런 상태인데도 ‘모든 것이 극복되었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고 경제체질이 허약하다 보니 미국이나 중국 등에서 불어오는 외풍에도 심한 독감에 걸리곤 한다. 더구나 요즘 원유가 급등에 환율과 증시마저 요동치고 있어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치권은 아직도 성장이 우선이냐 개혁이 우선이냐 갑론을박이다. 나라의 장래가 달려 있는 국책사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이해 당사들이 서로 ‘나라의 장래’에 명분을 내걸고 양보도 절충도 없는 수다로 국민을 우롱한다. 이것저것 눈치보다 보니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보다 못한 WTO 등에서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조롱기 어린 조언을 해준다.

 애국애족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니 머잖아 우리의 동녘 하늘에 찬란한 계명성이 돋을 것도 같은데 어쩐지 자꾸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건 왠지 모르겠다. <서용범 논설위원 yb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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