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넷피아 이판정 사장(2)

`실패는 유한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믿는 낙관적인 힘으로 인간은 발전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잠언이다. 한글인터넷주소 초기 개발단계에서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와 10여명의 넷피아 직원들은 그 불가능에 도전했고, 결국 세계 최초로 영문 도메인이 아닌 자국어로 인터넷주소 사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게 됐다.

“뭐라구요? 돌멩이가 뭐 어쨌다는 겁니까?”

도메인을 돌멩이로 알아들을 정도로 인터넷주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때였다. 이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메인에 대해 반나절 이상 설명해야 했으므로 노력 만큼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사회 공론화 방법을 모색하던 중, 1996년 6월 언론매체들과 함께 도메인 네임 확보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 사회적으로 도메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터라 캠페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대기업들의 참여로 최소 300개 이상의 기업들이 영문 도메인을 등록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때부터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로 도메인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고 관련업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연구진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나 선뜻 함께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글 인터넷주소 개발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 젖기 일쑤였다.

부정적인 의견들은 오히려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한글인터넷주소에 대한 고정관념은 깰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언젠가,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바로 내가 해보자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러나 현실은 열정만으로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벤처기업의 실험적인 기술에 그 누구도 선뜻 투자하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벤처업계가 당시 IBI의 한글인터넷주소 시스템 개발이 국내 인터넷 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이 될 중요한 기술 개발이라고 한껏 추켜세우기도 했지만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더욱이 IBI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국내 인터넷 관리자들은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아 시스템을 바꿔 잘못되는 경우 자기 책임이 아닌가 싶어 개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한글인터넷주소 기술의 완성은 일개 벤처기업이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난관에 부딪쳐 있었다. 다행히 회사가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돼 우수한 개발자들이 입사 했고, 불철주야 노력끝에 숱한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한글인터넷주소를 세계 최초로 탄생시킬 수 있었다.

나는 불가능은 가능성을 타진하는 의식의 작용일 뿐 그것이 행동의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불가능에 대해 도전하는 자에 의해 발전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한글인터넷주소를 기반으로 한 95개국 자국어인터넷주소의 세계화는 허황된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도 나와 넷피아는 불가능을 향한 도전의 길에 항상 서 있을 것이다.

 이판정@넷피아·pjlee@netpia.com

사진; 사진; 넷피아의 전신인 IBI 대표이사 시절 이판정 사장(왼쪽)이 IBI 지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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