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입찰 장기적으론 소탐대실
조달청이 행정전산망용 PC조달 방식을 올해부터 바꿀 모양이다. 조달청은 최근 PC업체들과 간담회를 하고 기존의 ‘희망수량경쟁입찰’ 방식을 ‘유사물품복수경쟁입찰’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한 업계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한다. 조달청은 간담회에서 “Q마크, K마크를 획득한 업체들이 동등하게 정부입찰에 참여할 수 있고 개방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여서 조달방식 변경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조달 입찰방식을 변경키로 방침을 정한 것에 나름의 타당한 점도 있지만 이것이 IT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저가입찰로 인한 출혈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간의 업체 관행이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할 것이다. 당장 행정전산망용 PC조달이 그간의 납품실적이 아닌 저가입찰 업체에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면 업체들은 저마다 상대보다 단돈 1원이라도 가격을 낮춰 입찰에 참여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물론 입찰 방식변경에 대해 이해당사자인 업체간에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정부가 이를 어떻게 조정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업체의 유불리를 떠나 정부가 저가입찰 방식으로 조달방식을 변경하면 그에 따른 문제점이 더 많다고 본다. 당장 업체간 출혈경쟁을 가져오고 이는 곧 시장질서 혼탁과 가격파괴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그간 조달에 참여하지 않았던 신규업체의 경우 공급권을 따기 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은 최근 경제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다 조달물량이 작년의 경우 46만여대에 달해 해당업체 입장에서는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저가입찰로 인해 출혈경쟁이 벌어진다면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은 관련업체들이다. 업체간 출혈경쟁은 부메랑이 돼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거나 사후관리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이런 악습은 그동안 저가입찰로 인해 우리가 많이 체험한 바 있다. 정부도 이런 악습의 반복을 막기 위해 입찰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더욱이 저가입찰은 기업의 신기술 개발이나 품질향상 등에 투자할 여력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이익이 없는데 어떻게 재투자가 가능한가. 대기업들은 저가입찰을 해도 적자를 다른 부분에서 보완할 수는 여력이 있지만 중소업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칫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조달물량을 따놓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할 경우 정부나 업체가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근래 IT업계에 이런 사례가 나타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고 업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공공부문에서 13억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단돈 1원에 낙찰됐고 2억원 규모의 개발사업은 1원을 써낸 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된 적이 있다. 누가 봐도 덤핑수주다. 해당업체들이 출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저가입찰이 당장은 구매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탐대실의 측면이 강하다. 해당업체들도 자성해야 한다. 저가입찰의 문제점을 인식해 제살깎기식의 출혈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출혈경쟁은 해당 산업 발전의 저해 요인이며 신규 수요창출이나 기술개발, 품질향상 등에도 걸림돌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조달청의 행정전산망용 PC 저가입찰 방식 변경은 재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