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기자의 콘텐츠 읽기](4)`통제`는 이제 그만

 통기타 문화가 젊은층을 거세게 휘감던 70년대, 정부는 건전한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분 아래 장발을 단속했다. 기타를 들고 야외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학생들은 머리를 군인처럼 깎고 기억도 아스라한 국민교육헌장을 줄줄이 외워야 했다. 교련복(군복)을 입고 등교했고 심지어 혼·분식을 강조해 점심 도시락까지 검사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시대상황이 모든 정부의 규제를 합법화시켰다.

 통제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선 강력한 리더십과 통제가 필요하다. 균일화하는 통제는 빈부의 위화감을 없애고 국민단합을 이끌어내는 데는 ‘최고의 약’이 될수 있다. 하지만 잃은 것 또한 너무 크다.

 5공화국 정권은 문화통제 정책의 하나로 애니메이션에서 비현실적, 폭력적인 요소가 드러나는 SF 애니메이션을 규제했다. 팬들의 눈에 한참 못 미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그 결과 애니메이션 업계는 단순 하청만이 존재하는 체질로 바뀌고 말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가위질로 상징되는 공연윤리위원회(공윤)가 한국영화산업 발전의 걸림돌이었음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이렇다할 대박 하나 없는 영화계가 급작스레 대형 블록버스터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공윤이 사라지고 난 후 부터다. 문화산업에 있어서는 적어도 규제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 확증된 셈이다.

 ‘굴뚝산업’은 보호와 통제로 오늘에 이르렀다. 가난한 집 장남에게 거는 기대처럼 제조업은 그렇게 육성돼 왔다. 장남이 아닌 자식들은 원치 않는 ‘보호와 통제’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21세기는 눈물로 배를 채우는 시대가 아니다. 제조업에 앞서 문화산업이 각광받고 부가가치 또한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한때 오락산업 정도로 치부하던 산업들이 효자 역할을 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다. 장남 위하듯 제조업의 잣대로 문화산업을 재단한다면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다. 문화산업에 있어 ‘보호와 통제’는 더 이상 발전의 요소가 아니다. 공윤의 해체가 영화산업을 발전시켰듯 게임·영상산업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지 생각해 곰곰이 볼 때다.

 kwle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