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심리 위축에 설상가상
세계적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전문회사들이 지난달 말을 기해 주력기종의 공급가격을 일제히 인상하자 국내 대리점들이 무리한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시게이트·웨스턴디지털·맥스터 등 세계적인 HDD 전문회사들이 올 초부터 가격인상에 들어가 지난달 말에는 3.5인치 80GB·120GB·160GB와 같은 주력기종까지 일제히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내 대리점 공급가가 3000∼4000원 가량 오른 것을 비롯, 소비자가 역시 지난 1월에 비해 2000∼5000원 가량 인상된 8만7000원∼8만9000원선(80GB 기준)에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가격인상은 HDD메이저들이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세로 매출감소로 이어지자 인위적인 정책을 동원해서라도 매출을 끌어올리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HDD의 특성상, 가격이 내려가다가도 신제품 출시를 계기로 원래 가격대로 회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제품 라이프사이클이 길어지면서 가격을 올릴만한 동인이 없어진 게 이번 가격인상의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게이트 국내 총판인 오우션테크놀로지의 강대식 팀장은 “4∼5년 전만 해도 6개월 주기로 신제품이 나왔으나 최근에는 1년 6개월이 넘도록 발표되지 않고 있다”며 “본사 차원에서도 더 이상 가격하락을 좌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아울러 대규모 대리점에 대한 견제도 한 몫 하고 있다. 대리점 공급물량에 따라 가격인하폭을 다르게 가져가던 기존 정책이 가격질서를 혼란시킨다고 판단, 공급가격을 획일화하되 연말에 이익을 배분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내 대리점들은 현 시점에서 가격인상은 무리라며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오히려 가격을 인하하며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고, 구매심리 위축으로 HDD 매기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외산 3사가 가격을 인상할 경우 시장점유율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수입단가 인상분을 소비자가에 반영시키기보다는 대리점 마진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도 “본사 정책대로라면 9만3000원(80GB 기준)까지 가격을 인상시키는 것이 맞지만, 소비자 심리까지 얼어붙은 지금으로서는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며 “더구나 3월 분기말을 앞두고 매출압박까지 가중되고 있는 터라, 마진 없이라도 일단 판매하고 보자는 것이 대리점 업계의 공통된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3사의 가격인상은 가격 횡포”라며 “국내 총판이나 지사를 통해 한국의 특이성을 대변해 줄 것을 얘기하고 있으나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라고 말해 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