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계약상의 `갑을 관계`

 지난 24일 정보통신 미래모임이 ‘대형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 분담’이란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울분을 토로하던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계약상의 ‘갑을 관계’다.

 일단 프로젝트 계약을 맺어 갑과 을의 관계가 맺어지기만 하면 이때부터 모든 책임은 을이 져야 한다는 것이 불만의 요지다. 처음에 계약을 맺은 후 나중에 추가 비용이 들어도 ‘을’은 아무 말도 못한다. 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잘못되면 책임소재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을이 책임져야 하는 관행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정보기술(IT)이 첨단산업이라 하지만 외형은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 따져보면 이러한 불공정한 갑을 관계는 우유 배달사업과 같은 전형적인 소규모 사업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일부에 국한된 얘기겠지만 배달원으로 우유 대리점에 취직을 하게 되면 계약서를 쓰게 된다.모든 우유 배달사고는 배달원이 책임질 것, 후임이 정해지지 않으면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등 그야말로 ‘갑’이라 할 수 있는 우유 대리점만을 위한 계약서다. 우유 배달이야 그나마 개인 사업에 국한한 일이라고 넘어가면 끝이지만 IT산업은 얘기가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괴이한 갑을 관계가 결국 둘 다 경쟁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현재의 IT산업이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속으로 곪게 하는 병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른바 ‘계약의 천국’이라 불리워지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고정계약이 아니라 유동계약의 개념으로 언제든 초기 계약과 달라지는 상황이 있으면 추가로 비용을 요구하는 등 ‘을’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이 이러한 선진국의 사례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과감히 기득권을 버려야 할 때다.

<국제기획부·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