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화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 시대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포르투갈 사람들이 즐기던 카드의 일종인 운수 가루다가 에도 시대에 일본으로 전해져 하나부타로 변형되었다는 게 지금까지 밝혀진 화투의 탄생 내력이다. 화투는 1월부터 12월까지 일 년 열두 달에 각각 상징적인 그림을 넣어 만들었는데, 가령 1월은 송죽, 2월은 매죽, 3월은 벚꽃 등등으로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자연친화적 분위기를 풍기는 화투와는 달리 서양인들이 즐기는 포커는 인물(킹, 퀸)과 기독교 사회 권력의 표상 승직(하트)과 물질과 화폐의 상징(다이아몬드) 농업(크로버)과 검, 즉 힘(스페이드)는 사회의식을 강하게 풍긴다고 한다.【이어령 저 <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인용】
한때 한국인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장소를 불문하고 화투놀이를 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던 적도 종종 있었다. 48장의 화투로 할 수 있는 게임은 끗수재기인 섯다를 비롯해 도리짓고땡, 월남뽕, 나이롱 뽕, 삼봉, 육백, 민화투, 고스톱 등 다양하다. 예전엔 섯다나 도리짓고땡이 놀음꾼들이 즐기는 게임(?)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고스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국기(國技)처럼 크게 유행했다. 오죽했으면 유 홍준 교수 같은 점잖은 학자도 명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다 고스톱 치다 광 팔고 난 잠시 짬에 화장실에 갔다가 운명하신 친구 아버님을 행복하게 고종명(考終命)한 분이라고 농 삼아 썼을까. 또 얼마나 그 열풍이 대단했으면 <고스톱,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같은 책들이 출간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까.
고려대 건축공학 대학원과 프랑스 페르피냥대학 공학박사 출신인 이종호 박사가 펴낸 <신토불이 우리문화유산>에는 고스톱에 대한 독특한 예찬론이 담겨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고스톱의 특징은 민화투에서는 무용지물인 피가 존중받는다는 것과 광, 십자, 띠들이 절묘한 견제력과 규칙을 담고 있는데 한 마디로 피는 민중의식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스톱은 다른 노름이나 도박과는 달리 서로 견제하며 화해, 중재하는 소당과 불공정 게임을 억지하는 독박이라는 룰이 있어 아주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게임이라는 것이다.
고스톱이 특히 재미를 끌었던 것은 고스톱의 룰이 세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서슬이 퍼랬던 5공화국 시절 전두환 고스톱이라든가, 뭔가 남의 패를 볼 수 있게 만든 이주일 고스톱, DJ의 세 아들을 빗댄 3홍 고스톱은 일그러진 세태를 풍자하며 서민들을 카타르시스해 주는 역할도 했다. 포커가 그야말로 포커페이스로 치는 폐쇄적인 심리적 게임이라면 신바람 나게 바닥 패를 두드리며 고를 연신 읊는 고스톱은 개방적이고 신명을 즐기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아주 잘 맞는 놀이문화의 일종이라고는 생각도 든다.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서도 고스톱의 열풍은 여전한 모양이다. 하지만 인터넷 고스톱은 어쩐지 살벌하다는 느낌이 든다. 견제의 긴장감을 덜어낸, 오로지 이겨야겠다는 집착은 중독이라는 또 다른 집착을 낳는다.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좋다는 항변도 있다. 정말 치매를 막아야겠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직장이든 집이든 틈만 나면 필사적으로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을 보면 인터넷이 이기라기보다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마약처럼 느껴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인터넷이 생산적인 도구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고작 고스톱 칠 때 바닥에 까는 너절한 카키색 모포 깔판 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것이다. 마치 게임하기 위해 초고속망을 깐 것 같은 우리의 잘못된 인터넷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서용범 논설위원 yb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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