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벤처투자의 사회적 가치

지난 2000년을 정점으로 벤처투자 시장은 급속히 위축됐다. 이 여파로 벤처기업의 자금난도 심화되고 있다. 경기침체와 자금난으로 휴·폐업하는 벤처기업이 늘어나면서 2년 연속 벤처기업의 수는 급감하고 있다.

벤처업계가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벤처투자는 크게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로 나누어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벤처투자는 하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경제적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경제적 가치의 극대화는 당연히 투자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단지 경제적 가치만을 내세우며 투자를 하고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즉 벤처투자의 사회적 가치가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벤처 암흑기를 맞게 되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과연 벤처투자의 사회적 가치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인가.

많은 벤처기업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던 투자자금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투자가 과열됐던 시기에는 자본력이 막강한 개인이나 일반기업들이 벤처투자의 본질인 투자손실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 벤처투자펀드에 과감하게 자금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창업투자회사가 모아서 운용하고 있는 돈은 직간접적으로 국민의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금이나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국내 대다수의 창업투자사들은 작은 규모의 조합이라도 제대로 구성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은 자명하다.

지난 2∼3년간 벤처기업의 비리, 코스닥 시장의 무질서함, 비도덕적인 상거래 질서 등이 신문의 사회·경제면을 가득 채운 사실만 보더라도 투자를 하는 사람이든 받는 사람이든 간에 도덕적 원칙이 결여된 경우가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눈 먼 돈이라는 생각에서 무분별한 투자와 비상식적인 경영을 일삼아 온 투자자와 경영자로 인해 벤처산업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만약 투자조합을 구성하는 돈이 국민의 돈이라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졌더라면 이러한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벤처기업의 성장이 내포하는 사회적 가치는 또 무엇인가.

지금까지 벤처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의 생산적 증대를 이룩하는 한편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기반 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한 축을 형성함으로써 사회적인 비전을 만들어 왔다. 이들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미친 영향과 역할은 크고 다양하다.

내적으로 지속 성장의 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단기간에 승부를 걸거나 권력에 편승하여 이익을 챙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고도의 기업 윤리를 견지한다. 그것이 바로 벤처정신이기 때문이다.

마치 예술성 풍부한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매스미디어에 진출한 후 인기를 쫓다가 자신의 예술혼과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벤처정신도 그것이 사회·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존재 의미인 사회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무늬만 벤처’라는 풍자어가 회자된 적이 있다. 그동안 일부 조급한 벤처기업들이 투자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드러내 놓고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몇차례 홍역을 치렀다. 지금은 2∼3년 전과는 달리 그런 기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도태된 것이다. 이는 아마도 사회적인 학습효과의 결과일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 둘씩 배워나가면서 업계 전체가 성숙해진 것이다.

벤처캐피털에는 학습의 시간이 필요했다. 벤처기업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경제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조급증이라는 고질병이 완전히 치유돼야 한다. 빠른 회수를 바라는 조급한 투자자와 경쟁기반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만들어낸 공급과잉은 모두 조급증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조급증이 치유돼야만 벤처투자의 경제 및 사회적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호흡이 긴 투자자와 벤처기업가의 건승을 기원한다.

◆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사장 greg@soft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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