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언어의 `용불용설`

 생물학자 J.라마르크는 ‘용불용설’을 제창했다. 그는 저서 ‘동물철학’에서 “어떤 동물의 어떤 기관이라도 다른 기관보다 자주 쓰거나 계속해서 쓰게 되면 그 기관은 점점 강해지고 또한 크기도 더해간다. 또 사용된 시간에 따라 특별한 기능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차차 그 기관은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작아져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고 주장했다.

종(種)은 진화한다. 사람도 꼬리가 있었다. 그 꼬리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꼬리가 차츰 없어졌다. 이젠 꼬리뼈만 남았다. 라마르크는 인간의 퇴화한 꼬리뼈를 흔적기관(痕跡器官)이라고 설명했다. 퇴화하는 것은 생체뿐 만 아니다. 인간의 언어도 진화와 퇴화를 거듭한다. 자주 사용하는 말은 남아 형체를 유지하지만 쓰지 않는 단어는 곧 사라지고 만다. 언어의 ‘흔적기관’ 역시 생체의 그것 만큼 복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어의 퇴화는 생체보다 더 과격하고 속도 또한 빠르다. 대학 입시와 각종 입사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어들은 범용어가 아닌 지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단어들도 한 땐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사랑을 받았을 것인데, 이젠 시험에서나 출제되는 잊혀진 언어가 되어버렸다. 대신 숱한 조어(造語)들이 그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다. 또 국적없는 혼용어들이 신세대 언어로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다. 공공적인 성격을 띤 미디어에서도 조어와 혼용어를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국어보다는 영어에 우선순위를 두고있다. 요즘은 중국어 열풍까지 불고 있다.

인터넷을 보면 퇴화하는 한글의 서글픔이 앞선다. 금속활자와 한글, 거북선은 세계사에 빛나는 우리의 자랑스런 발명품이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에서 한글의 자리는 별로 없다. 인터넷의 처음부터 전자우편까지 영어가 주도한다. 여기에 기하학적인 채팅어까지 난무한다. 한글의 설자리는 더욱 없다.

현대 언어의 ‘용불용설’은 인터넷에서 시작한다. 한글의 사용이 적고 왜곡돼 결국 사이버상에서의 한글이 ‘흔적기관’으로 남지 않을까 저으기 걱정이 앞선다.

<이경우 차장 kw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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