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년 간 한국인 사장 체제로 움직여 온 한국IBM이 외국인 지사장 체제라는 결론으로 사태가 ‘매듭‘ 지어져 가고 있다. 도매금으로 넘겨진 자괴감은 둘째로 쳐도 실적 위주로 월급을 받는 외국계 기업 특성상 많은 피고용자들이 겪은 맘 고생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난 5일 저녁, 외국인 신임 사장 체제가 공식 발표된 직후 마침 평소에 알고 지내던 IBM 지인들과 소주 한잔을 나누는 약속이 돼 있던 터였다. ‘공장 얘기 빼고 사는 얘기만 하자‘고 이뤄진 약속 이지만 외국인 사장 부임 얘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들이 처음 꺼낸 단어는 ‘비애‘였다.
외국인 지사장 체제가 불러올 변화 보다는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 자리까지 오르고,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한 신재철 전 사장에 대한 감회가 더 직접적인 듯 했다. 수일 전 “인내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고 푸석하게 웃었던 한국IBM 한 직원의 토로 이후 두 번째 들은 그들의 감정이었다.
지금쯤 한국IBM 직원들은 무슨 감정이 교차하고 있을까. 외부에는 새로운 유통 파트너사 이름이 거론되고 있고, 사업부문별 조직개편 윤곽이 모습을 드러내는 등 출발선에서 몸을 가다듬고 있는 한국IBM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희망‘을 얘기할 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국IBM의 희망찾기는 녹녹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공교롭게도 선임된 토니 로메로 사장이 지난 97년 IBM 지사 중 이번 사건과 유사한 일을 겪은 아르헨티나 및 라틴아메리카 남부지역 대표를 역임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우리 식으로 ‘구관이 명관‘이라는 판단을 본사가 했으니 어쩌면 한국IBM 직원들이 겪을 인내와 비애는 이제부터 시작일 지 모른다.
이번 한국IBM 사태(그들은 상황이라고 말한다)는 수요와 공급이 손바닥을 부딪쳐 만들어낸 작품이고 우리 사회에서 결코 사라져야 할 악령임에는 분명하다. 한국IBM의 희망찾기가 우리 IT산업의 질적인 도약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혜선 컴퓨터산업부 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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