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객사의 중국 공장 시스템 구축 건을 협의하기 위해 거래 관계에 있는 일본 M사의 항조우 소재 중국 법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법인은 중국 쩌장 대학 내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고 이 대학 졸업생과 대학원생들을 고용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설계는 없고 코딩만 하는 회사였다.
상담을 주선했던 관계자는 일본 동경 본사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불리는 설계 인력들이 설계 사양서를 작성해 중국 법인으로 보내면, 이를 접수해 코딩하는 분업화를 실현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설계 인력과 코딩 인력이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임금이 많게는 40%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를 보면서 그동안 많이 알려져 온 문제이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싶어졌다.
흔히 소프트웨어 개발자하면 특정한 개발언어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짜는데 여념이 없는 코더를 떠올리기 쉬우나 코딩은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있어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계(Design) 기술이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전체 구조는 물론 생산성, 확장성, 발전성 등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설계를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인력으로는 전체 구조, 기술의 선택 등 총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아키텍트와 시스템 사양분석·난이도 평가 등을 책임지는 시스템 분석가, 컴포넌트 레벨의 설계가 가능한 엔지니어 등이 있다.
총 고용 인력만 200만명이 넘는 미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저력은 바로 아키텍트, 시스템 분석가 등의 고급 설계 인력이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인력 구조에 기인한다. 전체 인력 중 이들의 비율이 30%이상으로 엔지니어, 프로그래머(코더)의 비율과 거의 비슷하다.
이에 반해 한국은 아키텍트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시스템분석가(10%), 엔지니어(20%), 프로그래머(40%) 등으로 고급 설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시스템분석가도 대다수가 대형 시스템통합(SI) 기업들에 종사하고 있다. 결국 중소 패키지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들의 고급 설계 인력 확보는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개발 인력의 능력에 따라 많게는 수십 배의 생산성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결국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소프트웨어 기업내 고급 설계 인력의 유무와 그들의 기여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국내 소프트웨어 인력은 1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해외 수출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위해서는 고급 설계 인력의 육성이 시급한 선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분야 인력 육성 방안으로 먼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일본 M사의 경우와 같이 내부에는 설계 인력만 두고, 코딩은 아웃소싱하는 철저한 분업 형태를 취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집중적인 설계 인력 배양을 통해 완성도 높은 시스템 구조·문서화·체계화를 갖춘 고품질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기대할 수 있다. 코딩은 전문회사나 대학에 맡기거나 중국·인도·베트남 등의 해외 인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대학의 관련학과에 맞춤형 소프트웨어 개발을 의뢰함으로써 대학에서부터 전략적으로 고급 설계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위해 산업 프로젝트 참여를 필수학점제로 운영하고 졸업 학위로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서진구 코인텍 사장 jkseo@koin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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