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25일 2차 6자 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지난주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개최됐다. 이 회담에서 남북은 군사당국자회담 개최 등 6개항의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남북은 핵 문제와 남북경협 등에 대한 일정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북측의 입장은 한미 협력이 아니라 남북 협력을 통해 6자 회담에서 성과를 내고 남북경협도 더욱 활성화하자는 것이었다. 북측은 지난 1년 간의 남북경협이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미국의 압력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남측에 대해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남북경협의 속도를 더욱 높여 나갈 것을 촉구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남측은 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간의 협력사업도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에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측의 적극성을 촉구하였다. 작년의 두 배로 일할 수 있는 조건, 즉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조건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 회견에서 언급한, 핵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남북 관계의 획기적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발언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균형적 실리 외교론에 바탕한 또는 그와 유사한 평화와 협력의 균형 발전론으로서, 이는 그 본질에 있어 핵-경협 연계론의 변종이라 할 만하다.
물론 철도와 도로 연결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 공단 개발사업 등 남북 경협의 지속에 대한 남측의 입장은 어느 정도 확고하다. 다만 그것은 시장 경제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북측이 시장 경제원리에 따라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성 등이 보장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나간다면 남북경협은 장기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북측의 자세 변화와 노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되어 있듯이 남북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정부 차원의 남북 협력사업은 단순히 시장 원리나 경제논리로만 접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남북 협력사업은 경제사업이자 곧 통일사업, 민족사업이기 때문이다.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민족통일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남북경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2차 6자 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아직은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지적대로, 핵 문제를 풀어가는 길은 긴 여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황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평화와 협력의 균형 발전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소극적인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평화와 협력의 균형 발전론이란 결국 현상 유지론쯤 된다. 이것은 분명,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부터의 중대한 퇴보다. 최근 훈넷이 통일부로부터 남북경제협력사업자 승인을 취소당했는데, 이것은 우리 정부가 과연 남북 교류협력에 실질적인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남북 교류협력에 대해 진정으로 의지가 있다면, 인터넷 교류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주와 동맹, 한미협력과 남북협력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진정한 균형외교를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남북협력의 획기적인 발전이다. 이러한 노력 없이 현상을 유지하면서 균형외교를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불균형 외교를 감추는 수사에 불과하며, 평화와 협력의 균형발전론 역시 종속적 동맹의 불균형 외교를 감추는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은 균형적 실리 외교를 위해서라도 핵 문제와 관계없이 남북 협력을 더욱 획기적으로 확대, 발전시켜나가야 할 때다. 균형을 통한 불균형의 지속이 아니라, 불균형을 통한 균형 잡기이다.
◆이태섭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tslee@ijnc.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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