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정부 출연연의 생존과제

 최근 신성장 엔진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정부 출연 연구소의 개혁 방안이 각계에서 언급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부 출연연이 국가 성장에 기여한 바가 많지만 같은 산업에 종사하면서 불합리한 점을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개선의 여지도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연구 프로세스를 짚어 보고자 한다.

 연구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는 산업체를 참여시킨다는 명분 아래 연구 자금을 분담시키고 반대 급부로 과실을 보장하는 방법이 쓰였다. 이런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나온 제품을 사용하는 기관은 경제성·경쟁력 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선택의 폭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제한됐다. 국내 기술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프로젝트에 자금을 출연한 회사에만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20여년 전 정부 출연연을 시작할 때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에는 사기업의 정보통신사업이 미미할 뿐 아니라 고급 인력을 확보할 여력도 없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나서서 해외 고급인력을 유치해야 했고, 대형 연구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위에 언급한 프로세스를 채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정보통신산업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을 뿐 아니라 기업의 역량이 커져 연구 인력의 규모·능력·자금 등 모든 면에서 기업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압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는 정부 주도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외화 절약을 위해 수입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엔 모든 프로젝트의 기준이 ‘수입 대체 효과’였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글로벌시대에 더 이상 인위적으로 시장 접근을 제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단순히 수입대체 효과에 머무르지 않고 수출을 확대해야 하는 시기로 들어섰다.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결과물이 도출되는 새로운 연구 모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제품 기술 개발은 기업에 맡기고, 국가는 원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이 하기 힘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기업은 사업적 판단에 의해 개발한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토록 하고, 국가는 장기적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야 한다. 이는 몇 년 안에 단기간 투자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더 이상 경쟁력이 없거나 경제성이 부족한 연구물을 정책적인 고려에 의해 채택하는 배려는 사라져야 한다. 이는 ‘연구만을 위한 연구’를 양산할 뿐이다. 경쟁력 없는 연구를 했음에도 또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시간이 지나면 진급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해외에서도 통하는 연구결과물을 기대하기 힘들고 외국의 선행 연구를 계속 뒤따라 갈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연구 평가제도도 필요하다.

 자체 평가에 맡기면 과대포장을 하게 된다. 필자는 그동안 세계 최초라고 하는 연구 발표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지금와서 냉정하게 되돌아 보면 세계 시장을 석권한 연구물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의 잣대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이밖에 기왕에 제품 연구를 할 것이면 연구 개발에 관련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참여해 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단기간에 연구를 끝내고 적당히 기업체에 넘기고, 또다시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방식으로는 세계 최고를 기대할 수 없다.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 거듭나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수입 대체 효과를 위해 도입됐던 과거의 연구모델이 수출을 목표로 세계 시장을 두드려야 하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과연 국가 경쟁력 제고와 원천기술 개발이라는 큰 명제에 맞는 방법인지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김홍진 플라리온테크놀로지스 아태지역 사장 hj.kim@fla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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