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상품 기술개발이 국력의 살이라면 국가기반기술은 뼈대다. 에너지, 교통, 환경, 방제, 국방, 항공·우주기술이 바로 기반기술이다. 특히 항공우주기술은 복합기술로 기술보유만으로도 국력을 상징한다. 초음속 대형 여객기와 수송기, 대륙간 우주 비행선, 위성통신방송, 지구자원탐사, 지구환경감시, 기상예보, 해양정보 수집, 지구공간위치정보 제공 등 응용분야가 다양하다. 선진국들은 이미 2차대전 전에 항공산업을 이룩했고 70년대말까지 우주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달여행과 우주왕복선의 운용으로 우주정복의 절정을 지나 현재는 군사와 상업적 응용이 한창이다.
이미 지난 중동전과 이라크전에서 항공, 우주, 전자, 정보통신의 융합에 의한 전략무기의 위력이입증됐다. 유럽과 미국은 달에 이어 화성탐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중국은 작년 11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유인 우주선을 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평화헌법을 내세워 1950년대초부터 정부 주도로 위성 발사 로켓 개발에 착수, 70년초 자력으로 저궤도 위성발사에 성공했다. 현재 정지 궤도와 태양계 탐험에서도 미국, 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이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선진국들은 우주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매년 150억달러를 쓰고 있는 것을 비롯해 EU(40억달러), 러시아(20억달러), 일본(30억달러), 중국(10억달러) 등도 매년 수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국들이 전략 무기화가 가능한 항공우주기술에서 모두 우리나라를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의 꿈을 실현할 우리나라로서는 잠재적 국력을 위해 경제력에 걸맞는 항공우주기술개발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89년에 이르러 과기부 산하에 항공우주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시작했으나 90년 중반까지도 예산 규모나 프로젝트 내용으로 볼 때 기초연구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원이 국제 공동으로 탐사위성을 발사하고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로켓 기술 축적을 위해 시험 모델 개발을 시도했으나 아직 초보단계다. 다만 고흥 자체 발사체장 건설을 비롯해 정부도 최근엔 항공우주개발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어 다행스럽다. 현재 정부 출연 약정하에 항공우주연구원이 착수한 개발사업 예산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1조원이 넘는다. 2015년까지는 5조원정도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발사체 개발이 성공하려면 아마도 그 두배가 소요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대규모 예산을 투입키로 한 항공우주개발 사업이 추진체제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계획 차질은 물론 자칫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항공우주기술의 핵심은 비행기 엔진과 발사체 기술로 비록 평화목적의 응용이라해도 선진국들은 엔진이나 로켓 기술을 쉽게 이전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40∼50년 전에 완성해 놓은 기술을 배워 오지 못하고 원점에서부터 자체개발하려면 시간과 예산이 엄청나다. 후발주자로서 우리는 최적의 개발체체와 획득전략의 선택이 요구된다.
장기투자와 여러 분야의 정부기능이 동원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항공우주기술개발은 범정부차원의 추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진국들처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항공우주위원회’와 사업추진을 전담하는 ‘항공우주처(청)’ 같은 전담 사업 추진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항공우주시스템은 우주에서 한번 고장을 일으키면 시스템을 모두 잃기 때문에 신뢰도가 매우 중요하다. 또 복합적 요소가 결집된 대형 시스템 기술일 뿐 아니라 전략기술로서 정치, 안보, 무역 등에서 많은 제약이 따른다. 주민의 안전, 환경 등 법·제도적 준비뿐 아니라 인접국간의 상호 안전협약도 체결해야 한다. 기술협력, 안보 외교, 군사, 교역 분야에서 국제간 협조도 필요하다. 항공우주기술의 축적이 우리나라의 자주국방 능력을 향상시키는 핵심 사업임을 아무도 부정하지않는 만큼 국가차원의 추진체제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정선종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회장(전 ETRI 원장) sjchung4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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