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분위기 속에 올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지나간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건·사고도 많았던 만큼 한 해를 정리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적게만 느껴진다.
올 한 해는 기업경영자들에게 가장 힘든 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수침체로 해외에서 탈출구를 모색해야 했으며 대선자금을 둘러싼 검찰수사 등 경영외적인 환경은 기업가들의 경영의지를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기업들이 인사는 물론 내년 사업계획까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연말에 누구나 기대해봄직한 경기회복에 대한 희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모든 기업들이 이렇게 한 해를 힘겹게 보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국적 IT기업들은 한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모진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매출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고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세금추징이나 납품비리에 대한 검찰수사 등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동안 한국시장에서 쌓아왔던 명성이나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사장자리가 비어 있어도 사장을 맡을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게 현재 다국적 IT기업들의 현실이다.
한국의 IT산업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해온 그들이다. 또 앞으로도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동반자들이기에 다국적 IT기업들의 지금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다국적 IT기업이라고 해서 국내 기업과 달리 특혜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당연히 국내 법질서를 따라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이에 상응한 제재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영업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관례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우리냐’ 하면서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변하고 있다. 성역으로만 여겨져 왔던 청와대나 그룹총수들마저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 음울한 과거를 걷어내기 위한 총체적인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다국적기업 또한 예외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다국적 IT기업들의 현실은 급변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제대로 대응치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현 상황으로 인해 다국적 IT기업 본사가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눈이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한국지사의 현 상황이 그동안 본사 주주들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남겨주었던 한국지사를 무시하는 빌미로 이용돼선 안된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세계 IT시장에서 한국지사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온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이에 따른 부담은 전적으로 한국지사가 아닌 본사의 짐이 될 뿐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신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첨단시스템을 주저없이 도입하는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다. 다국적기업에 종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협회나 단체의 장을 맡는 것조차 사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 시장에서 그들이 이룬 업적까지 과소평가돼서는 안될 일이다. 다국적 IT기업의 한국지사가 최근의 분위기에 편승해 본사에서조차 따돌림을 당한다면 한국시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아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망년회가 이어지고 있다. 다국적기업 한국지사의 망년회도 말 그대로 최악의 올 한 해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한국 IT산업에서 그들의 역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Happy New Year.
<양승욱 정보사회부장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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