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송년회 풍속도가 달라진다

 12월 달력이 동창회와 송년모임 약속으로 빼곡하다. 자연스레 ‘폭탄주’가 돌고 2차, 3차까지 가다 보면 다음날은 하루 종일 쓰린 속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다. ‘내년에는 술 끊어야지’ 다짐만 할 뿐, 이 속에서 한 해를 되돌아볼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술 없는 알찬 연말’을 보내려는 이들이 꽤 많이 늘고 있다. 그동안 술과 노래로 망가지는 망년회만 해 왔다면 이런 모임을 한번쯤 생각해 볼만도 하다.

 삼성SDS 과장인 K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 상도동 청운보육원을 찾을 예정이다. 마침 20일에 ‘청운의 밤’이 열리기로 돼 있어 회사 보육원 봉사팀과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로 한 것. 피자와 음료수 등 각종 간식거리는 물론, 장기자랑도 준비하고 있다.

 사내 동호회인 보육원 봉사팀에 가입하면서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월례 가족행사가 돼 버렸다.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가자고 졸라댈 정도다.

 K과장은 “어려운 이들과 기쁨을 같이한다는 것이 보람차다”며 “올 연말에는 주위에서도 동참하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중소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P차장은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서 가족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출장이 잦아 평소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라도 부족한 대화를 보충하기로 한 것.

 “사진을 앨범에 붙인 후 간단한 설명도 덧붙이려고 해요. 특히 앨범 맨 뒷장에는 한 해 동안 가장 기뻤던 일과 아쉬웠던 일, 새해 다짐을 각자 적을 계획입니다. 다른 식구에 대한 칭찬도 덧붙일 거구요.”

 P차장은 ‘아빠 얼굴 보기 힘들다’는 비난성 멘트가 넘치겠지만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가족과도 따뜻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회사 차장인 L씨는 연말에 가족과 뮤지컬을 보려고 예매해 놓았다. 얼마 전 회사에서 송년모임으로 공연을 보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던 것. 다음날에는 근처 찜질방에서 가족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 해를 마감할 계획이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B씨는 24일 부인과 정동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마침, 밤 11시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 정동진 등명락가사에 도착하는 여행사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일출을 바라보며 내년을 설계하고, 오후에는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눈썰매와 눈사람도 만들 예정이다. 정형화된 여행사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연애할 때 기분도 낼 겸 괜찮을 듯싶다고.

 인터넷 주소 관리업체 후이즈에 근무하는 C팀장은 회사 송년모임이 있는 19일이 무척 기다려진다. 사장이 직접 록을 연주하는 깜짝 공연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을 포함해 6명으로 밴드가 구성돼 있는데 맹연습을 하고 있다”며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어느 해보다 고생한 직원들을 위해 사장님이 나서서 위로공연을 하겠다고 마련한 건데, 실력도 워낙 수준급이라 기대된다”고 귀띔했다.

 이런 풍속도가 정착된다면 늦은 시간 길거리를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이들을 보기가 힘들어질 것도 같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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