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싸구려 마카로니 웨스턴의 우울한 히어로나, 매그넘 44를 들고 분노의 눈길로 뒷골목을 헤매는 경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실수하는 것이다.
그는 라디오 방송국 DJ와 스토커의 관계를 다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버드’나 ‘추악한 사냥꾼’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기념비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감독으로서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멜로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는 왜소한 개인과 개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마찰음을 일으키는가를 탁월한 안목으로 형상화하는데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스틱 리버’는 보스톤 외곽 지역에 있는 강 이름이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강물을 비추고 있다. 범죄가 일어나기 직전 피살자인 ‘지미’의 딸이 파티를 벌였던 ‘블랙 에머랄드 술집’ 주위로 강물이 흐른다. 지미는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을 직접 처단하여 강물 속으로 시체를 던진다. 우리들의 천대받은 삶을 껴안으며 묵묵히 흐르는 저 강물을 보라, 이렇게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흐르는 강물처럼, 제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삶은 없다. 때로는 격정적 흐름으로, 때로는 보이지 않게, 그러나 조금씩 움직인다. 한때는 영원할 것처럼 생각되었던 감정들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거리 위에 자신들의 이름을 낙서하며 놀던 숀과 지미, 데이브가 낯선 두 남자 때문에 우정이 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또 다른 일로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인생의 길 위에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함정이 놓여 있고 우리가 만약 그 함정을 피한다고 해도 갈라지는 수많은 길 위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우정이나 어떤 사랑도, 그때마다 똑같을 수는 없다.
사건의 핵심은 지미의 딸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누가 범인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그 이면에 잠복되어 있는 것은 한 동네에서 성장한 세 친구가 어린시절 겪은 성폭행의 악몽이다. 지미는 강인하다. 그는 딸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지만,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찾아내 자기 손으로 처단할 것을 맹세할 정도로 복수심이 강하다. 데이브는 어린시절 겪은 성폭행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데이브의 불행은 지미의 딸이 피살되기 직전 그가 같은 술집에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내인 셀레스트마저도 자신을 불신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새벽, 피묻은 손으로 들어온 남편이 범인일 것이라고 믿은 셀레스트는 지미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다. 지미 역시 가장 가까운 친구를 믿지 못하고….
매사추세츠주 강력계 형사로 성장한 숀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는 친구들의 불행을 보고 자신을 떠난 아내에게 마음을 연다. 그가 마음을 여는 것이야 말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진정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엔딩이 생각보다 늘어진다고 불평하지 말자.
지미가 술병을 들고 거리에서 울부짖는 장면에서 끝났다면 ‘미스틱 리버’는 카뮈의 부조리 사상을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한 작품의 하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가족주의를 반영했다고 공격하기보다는, 평생을 영화에 몸 바쳐온 이 늙은 감독이 전하는 삶의 지혜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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