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신시장에 유무선·통신방송 결합상품 규제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우리보다 앞서 통신시장에 경쟁을 도입했던 해외사례를 연구함으로써 국내 정책방향의 해결점을 찾아본다.
우선 최근의 경제이론은 결합상품 판매가 소비자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경쟁적·반경쟁적 효과를 포괄적으로 고려하되, 주상품과 부상품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돼 있으면 반경쟁적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영국의 결합상품 규제제도는 과거 독점적이었던 기본통신서비스(주상품) 시장의 경쟁정도가 얼마나 진척돼 있느냐에 판매 허용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의 경우 장거리 전화 시장경쟁이 상당수준 정착돼 장거리 전화 서비스와 단말기의 결합 판매에 관한 모든 규제를 철폐했다. 시내전화와 결합판매는 미국 통신법에 따라 시내전화 시장이 충분히 개방된 조건하에서 시내전화를 별개 가격으로 분리 제공하고, 장거리·부가서비스 등을 결합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영국도 과거 독점적 지위에 있던 BT의 결합판매를 원천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할인 결합판매 효과의 경제적 분석을 통해 BT의 결합상품이 지배적 지위에 있는지를 판정하고 경쟁사들이 비슷한 결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 할인 결합상품의 부상품 가격이 원가이하인지, 소비자혜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경쟁법 위반 여부를 심결한다.
미국과 영국의 규제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통신서비스의 결합판매가 반경쟁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주상품시장의 독점사업자 존재여부와 경쟁진척도부터 우선 고려한다는 점이다. 둘째, 시내전화와 같이 과거 독점적이었던 시장도 시내망 개방과 재판매 허용, 번호이동성의 도입 등으로 경쟁여건이 마련돼 있으면 비록 지배적 사업자의 점유율이 매우 높아도 결합상품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엄격한 회계분리와 면밀한 원가산정 등을 검토해 지배적 사업자의 결합서비스를 허용한 일례가 있다. 셋째, 주 상품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결합서비스를 통해 부 상품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수 있는 경우도, 시장경쟁 활성화와 소비자혜택을 위해 오히려 권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쟁사업자 또한 비슷한 상품경쟁력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전제에서다.
이런 추세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 통신서비스의 규제제도는 다음과 같이 개선돼야 한다.
첫째, 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전기통신사업의 금지행위의 유형 및 기준’ 조항은 폐지하는 대신, 이를 ‘필수설비 사업자의 결합 판매’에 관한 조항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필수설비 보유 사업자의 결합서비스는 경쟁제한성이 우려되면 통신위원회가 이를 심의해 허용여부를 결정한다는 정도가 바람직하다. 둘째 제22조 2의 1항에 명시된 소비자 선택권 보장 조건은 큰 문제점은 없으나, 가격할인 효과를 억제할 수 있으므로 영국의 ‘오프텔’ 가이드라인처럼 부상품이 원가이하로 제공되는 경우에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재 고시는 KT의 시내전화와 SK텔레콤의 이동전화는 모든 결합판매를 당연위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이론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소비자 편익이나 비용절감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과잉규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시내전화 시장은 KT의 완전독점 구도인 것이 사실이고 경쟁활성화도 여전히 요원하다. 따라서 KT의 시내전화 관련 결합상품은 필수설비 개방 등을 통해 시장경쟁 기반이 확실히 마련될 때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최근 KT가 시내전화·이동전화 결합상품으로 준비중인 원폰 서비스의 허용여부가 관심거리다. 결론적으로 KT의 원폰서비스가 이동전화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단순출시뿐만 아니라 할인판매도 허용해야 하며, KT의 유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와 무선랜, 무선인터넷의 결합서비스는 경쟁사들도 유사한 상품을 출시할 수 있으므로 역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각종 멤버십카드나 로열티 프로그램 등은 지금처럼 가격차별을 이유로 규제할 경우 오히려 사회 전체의 후생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므로, 멤버십 제도에 대한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ssy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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