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예결위가 내년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출연금 예산을 편성하면서 소위 ‘가용재원’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상당수 출연연들의 예산이 삭감될 지경에 놓이게 됐고 출연금으로 지원되는 고유사업 포기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가용재원’의 개념을 출연연에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또 적용한다면 어떤 잣대가 필요한지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결위에서는 ‘가용재원’을 조정유동자산에서 조정유동부채를 차감한 잔액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차대조표상 당좌자산과 장기금융상품 등에서 유동부채와 퇴직급여충당금 등을 차감해 산정하게 된다. 이는 내년도 출연금에서 ‘가용재원’으로 산출된 금액만큼 예산을 삭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회 예결위는 ‘가용재원’을 출연연구소에서 남아도는 여유자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복식부기에서는 단순히 유동자산에서 유동부채를 차감한다고 해서 여유자금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차대조표 차변은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표시하지만, 대변을 보면 조달된 원천에 따라 자금에 대한 각종 제한과 청구권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둘간의 관계가 면밀히 분석돼야만 진정한 여유자금이 산출된다.
이러한 ‘가용재원’ 산식에는 출연연의 연구개발준비금 등 각종 준비금들이 조정유동부채에서 누락돼 있으며 선급비용, 선급금들이 조정유동자산에 포함되어 있는 등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가용재원’을 출연연에서 용도제한 없이 자유롭게, 차년도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이 가용재원 개념은 기업회계 기준서에서의 순운전자본과 유사한 것으로 짐작되나, 기업에서도 순운전자본은 자금 흐름을 관리하는 데 사용할 뿐, 이를 갖고 사업예산을 편성하지는 않는다.
국회 예결위는 정부예산은 수입과 지출이 동일한 균형예산으로서 남김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본 ‘가용재원’이 정부예산의 잉여액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런데 현재 출연연은 예산액 중 30∼40% 정도만 정부출연금으로 지원받고 나머지는 자체수입으로 충당한다. 여기서 자체수입이란 주로 정부 부처나 기업 등으로부터 경쟁에 의해 연구과제를 수주해 예산을 충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예산은 매년 수입과 지출을 심사하기 때문에 본 ‘가용재원’이 잉여금이라 할지라도 정부출연금보다는 기관의 자체 수입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용재원’에 의한 예산편성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출연연에 대한 예산지원은 삭감하고 연구실적 저조 등으로 경쟁력이 저하돼 재정적 여유가 없는 어려운 출연연을 더 지원하는 방식이어서 출연연의 경쟁력 강화라는 정부 정책과도 배치된다.
특히 유의할 점은 연구기관들이 기업과는 그 특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성공확률이 높은 사업만을 영위하는 기업과는 달리 출연연은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장기간에 걸친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장기·기초연구는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후, 한둘의 성공을 이끌어 낸다. 또한 정부나 기업에서 발주하는 연구과제들은 주로 단기적 성과를 위한 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연구소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자체적인 시드(seeds)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연구소 내 자체 연구자금이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의 차이를 고려할 때, 연구소 회계정보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 기업회계논리를 단순히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번 논란은 출연연의 재무제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정부 출연연구소 재무제표가 통일성이 부족하고 난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하루 빨리 출연연의 회계기준을 재정비하여 기업 못지 않은 투명한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통일된 출연연의 재무제표를 비교 분석하여 정부출연연구소 경영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때 비로소 어느 연구소가 ‘여유자금’이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 조성표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spcho@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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