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전망대]미국-중국 TV분쟁

 미행정부가 지난 18일 중국산 섬유제품에 쿼터를 부과한지 일주일도 안돼 중국산 TV제품에 최고 46%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국제무역질서를 무시한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미국, 중국 두 나라간의 무역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중국, 말레이지아의 TV업체가 시장가격 이하로 TV를 판매해 피해를 입었다는 일부 가전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지난주 중국산 TV에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물리기로 예비판정을 내렸다. 반면 함께 고발된 말레이시아산 TV에 대해선 덤핑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TCL과 콘카그룹 등 중국가전업체들은 당장 다음달부터 미국시장에 판매하는 TV제품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어야 하며 대미수출도 사실상 중단된다.

 ◇배경=미국이 중국산 TV에 대해 무역제재의 칼을 뽑아든 근본 배경은 기록적인 중국의 대미무역 흑자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무역 흑자는 1000억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1300억달러 규모로 치닫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쏟아지는 온갖 값싼 공산품에 내수시장이 거의 점령당한 미국은 뒤늦게 중국측에 위안화 평가절상과 시장개방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제재조치로 타격을 입는 중국산 TV의 대미수출량은 지난해 5억5700만 달러. 연간 1000억달러가 넘는 중국의 흑자규모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애꿎은 중국산 섬유, TV제품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중 무역압박의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중국의 피해=이번 조치로 중국 최대의 TV제조업체 시추안 창훙전기는 46%, 2위업체인 TCL은 31%, 콘카그룹은 28%의 반덤핑 관세를 부담해 한다. 지난해 1880만대(21억4000만달러)의 TV를 수출한 중국입장에선 전체 수출물량의 25%를 소비하는 미국시장이 막힐 경우 이 물량을 내수시장에 퍼부어야할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로 인해 중국 TV업계 매출이 평균 6∼7% 감소하는 한편 공급과잉에다 마진율이 낮은 중국 TV내수시장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로 미상무부의 반덤핑 발표 직후 상하이와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계 TV업체들의 주식은 일제히 폭락했다.

 ◇전망=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중국산 TV세트에 대한 관세부가 결정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다음달 원자바오 총리의 미국방문까지 연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 당국자들은 이번 제재조치가 단순한 무역문제가 아니라 대만독립을 둘러싸고 전쟁불사를 외치는 중국을 제어하려는 외교압박이라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이처럼 보호무역문제가 외교관계로까지 번질 조짐이지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부문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내년 5월 미국 상무부가 반덤핑 최종판정을 내리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당장의 대미수출감소보다 중국의 대외무역 전반에 미칠 심리적 충격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중국 외교부의 한 관리는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실효를 거둘 경우 중국산 가전제품에 시장을 잠식당한 한국, 일본 등 여타 아시아국가들도 대중 무역규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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