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0과 1의 2진수다. 맞거나 틀리거나, 흑이거나 백뿐이다.
오래전 아날로그 시절, 디지털은 흑백의 세계로만 치부됐다. 다양한 스펙트럼과 색상을 지닌 아날로그에 비해 질이 떨어지고 비인간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디지털은 급속히 진보하고 있다. 흑백뿐이던 색상이 컬러화되고 아날로그보다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내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아날로그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세계를 창출하고 있다.
0도 1도 아닌 새로운 것들이 마구 생겨나고 있다. 그토록 다양성이 강조되던 아날로그식 사고로도 도저히 이해도, 상상도 안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요즘도 아날로그보다 못한 디지털이 존재한다. 수능시험의 국어문제에 정답이 2개라는 주장이 제기돼 화제가 됐다. 논란끝에 평가원에서 수능 초유로 2개를 모두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기존 정답인 3번항을 선택한 수험생들이 항의 시위를 한다는 웃지못할 얘기도 들린다.
시대에 뒤떨어진 잘못된 교육의 씁쓸한 단면이자 예고된 일이었기도 하다. 얼마전의 일이다.
“요즘 동네 엄마들 사이에 시험때문에 말이 참 많아요. 학교에선 답이 틀렸다는데 엄마들 생각은 다르데요. 정답은 아니지만 자기 애가 고른 답도 틀리지 않다는 거예요.”
이사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4가지 답안 중 올바른 느낌을 고르라는 문제였다. 정답은 기쁘다였던 것 같다. 아마 열심히 벌어 좋은 집으로 이사가는 얘기의 일부였을 걸로 이해된다. 문제는 슬프다를 선택한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심정으로는 이사가는 게 정말 싫은 일일 게다. 우리 아이도 이사를 갈때마다 싫어했다. 정다운 친구와 헤어져야하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컨버전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지금, 우리 아이들은 0과 1의 세계, 흑백의 논리에 머물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디지털컨버전스엔 정답이 없다. 창의력과 감수성으로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우리 교육엔 아날로그가 필요한 것 같다. 100% 정답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90%, 80%짜리 답이라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성호부장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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