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업]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엄홍길 지음

 이레 펴냄

 

 “내 청춘의 고귀한 시간들은 고스란히 히말라야에 바쳐졌다. 앞날을 예감할 수 없는 히말라야의 설빙에서 나는 내 육신의 모든 열정과 까마득한 절망을 피켈로 찍어가며 희박한 공기 속에 펼쳐진 생사의 경계를 넘나 들었다. 스물다섯살에 에베레스트에 첫 도전장을 내민 이후 무려 16년간 나는 한시도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K2 정상을 밟으며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에 한국인 최초로 마침표를 찍었다.”

 2003년, 올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인류가 발을 들여놓은 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5월에는 이를 기념해 내로라하는 전 세계의 산악인들이 모이는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 기념 등반’이 있었고, 그곳에 한국의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초청받아 참가했다.

 엄홍길은 2000년 7월 K2에 오르며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신화적인 산악인이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히말라야의 8000가 넘는 위성봉 2개(로체샤르와 얄룽캉)를 마저 올라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2봉의 위업을 달성하는 것과 ‘7개 대륙 최고봉 등정’까지 꿈꾸고 있다.

 도서출판 이레에서 출간한 ‘8000m의 희망과 고독’은 히말라야의 탱크라고 불리는 의지의 산악인 엄홍길이 1985년 에베레스트에 첫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도도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들의 정상을 밟아가며 마침내 2000년 7월 K2 등정으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기까지, 그 고난과 극한의 상황, 감동적인 정상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2000년 7월 31일 오전 6시 30분, 43일간의 긴 원정 끝에 등반대장 엄홍길은 K2 정상에서 무전기를 통해 베이스캠프에 등정 소식을 알렸다. “여기는 정상이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갈 산이 없다.” 16년 간의 긴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K2 정상에 서보니 다른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발아래로 펼쳐져 보였다. 엄홍길은 그렇게 30분 동안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는 그동안 히말라야에 도전하면서 가슴에 묻어야 했던 8명의 동료들 사진을 K2 정상 눈 속에 묻었다. “너희들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젠 마음놓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

 엄홍길이 1985년부터 16년 동안 오른 히말라야 8000m 14좌. 그 영광의 기록 뒤에는 꼭 14번의 실패가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을 따지자면 셀 수도 없다. 이틀 동안 눈 속에 갇혀 비부아크를 해보기도 했고 1992년 낭가파르바트 원정 때에는 동상에 걸려 오른쪽 엄지발가락 한마디와 두 번째 발가락 일부를 잘라야 했다.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셰르파의 죽음, 같이 원정을 떠났던 대원들의 실종·사고사. 히말라야의 고봉들은 그에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련들을 안겨줬다.

 이 책은 엄홍길의 파란만장했던 등정의 날들을 담고 있다.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우정을 쌓아갔던 친구들을 설산에 묻어야 했던 슬픔들, 어떤 고통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도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히말라야의 어마어마한 거봉들 그 자체와 그들을 오르며 겪어야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한 강인한 영혼의 이야기인 것이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