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누군가가 흑인 랩 가수에 비교한 적이 있다. 안락이란 조금도 맛보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노래하며 세상의 곤궁을 전한 것이 80년대의 래퍼들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체구가 유난히도 작아 ‘작은 참새’라는 의미의 피아프란 예명을 얻은 그의 삶은 아닌 게 아니라 참으로 혹독했다.
1915년에 태어나자마자 그의 어머니는 도망쳤고, 아버지 역시 피아프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매정하게 멀리 떠나버렸다. 어린 피아프는 고아가 되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39년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나날을 보냈다.
우리가 그의 노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 파담 파담(Padam padam)’ 등에 감동하는 것은 삶의 어려움을 체험한 사람한테서만이 나오는 진실한 소리와 절절함 때문이다. 근래 음악의 노랫말처럼 대중을 꼬드기기 위해 꾸며낸 거짓 경험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그가 생의 후반부인 60년에 발표한 곡 ‘난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는 영혼을 토해내듯 불러 마치 뼛속을 파고드는 짜릿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그것은 자신의 험난한 생에 대한 불굴과 무퇴(無退)의 장엄한 선언이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에 비견될 만한 명작이다.
에디프 피아프가 그렇게 노래할 수 있었던 바탕은 빈곤함을 체험한 데 있지 않을까. 그래야 절실한 노래가 나온다고 본다. 그런 가수들은 세상의 비정을 알기에 노래를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노래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든, 비틀스든, 신중현이든 과거 음악계의 별들은 한결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배고픔을 알았다.
엘비스는 지독히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트럭 운전을 하다가 음반취입의 기회를 잡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슈퍼스타가 된 후 자신의 고가 자동차나 옷을 주변사람들에게 마구 희사했는지도 모른다. 비틀스 역시 모두 노동계급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무명시절 독일 함부르크로 원정 연주를 다니며 좁은 단칸방에서 기식하는 밑바닥 생활을 했다. 혹자는 그리하여 예술분야의 스타덤을 ‘눈물 젖은 빵의 미학’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것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예술 혼을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유명가수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우리의 경우는 가난에다 딴따라라는 사회적 멸시가 더해지는 이중고를 당했다. 그에 반해 90년대 이후 가수들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음악을 한다고 주변의 무시를 당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 중에는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 실력을 갖춘 사람들도 많지만 왠지 그들의 음악은 ‘정’이 덜 간다. 배고픔을 알지 못한 탓인지 절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동의 부족’과 직결된다.
에디트 피아프가 사망한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프랑스에선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그의 40주기 추모행사가 끊이질 않는다. 그의 생애를 더듬으면서 다시금 노래하는 예술가의 환경적 조건에 대해 생각해본다. 고단한 생활을 해본 사람의 노래가 대중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요즘 가수들은 배고픔을 너무도 모른다.
임진모(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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