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인터넷 자율규제 시대

 ‘인터넷’에 가장 고마워 할 사람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아닐까.

 80년대초 자신의 저서인 ‘제3의 물결’에서 예견했던 지식정보화 사회를 실현시켜 준 주인공이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 인터넷은 현실공간과 거래의 확장, 투명성 제고에서 나아가 문화와 관계의 변화까지 요구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가져다준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침해와 유해 콘텐츠 유통 등 역기능의 해소와 누구나 안전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미국 인터넷 정책의 기조는 ‘자유경쟁’이었다. 인터넷 시장의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정부의 최소 개입을 통해 인터넷이 가져다 준 기회를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지난 98년 ‘스팸메일 금지법’을 제정한 이래 처음으로 불법 메일 발송업자에게 200만 달러의 벌금형을 부과했다. 자유경쟁도 좋지만 안전한 인터넷의 구현이 우선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역기능 문제는 이미 뜨거운 이슈가 되어 있다.

 올해 들어 정부와 공공기관의 규제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를 100% 해결하기에는 왠지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인터넷 세상을 중앙 통제 방식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은 무엇일까. 이제는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담당하는 기업과 이용자가 스스로 참여하는 ‘자율규제’가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율규제는 기업과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조절을 통해 위험요소를 줄임으로써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기업을 보호해 잠재적 이윤을 담보하는 고차원의 경영활동이자 사회활동이다. 이에 대한 투자를 소모전이 아닌 생산적 투자로 보는 기업의 인식전환은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도 기업과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자율 규제가 그들의 열정을 증폭시켜 안전한 인터넷을 실현하는 효과가 더욱 높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0년을 전후로 일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자율규제 지원활동이 있었지만 기업과 이용자의 참여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활동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제는 정부도 선진형 자율규제를 연구하고 자율규제의 표본을 적극 양성해 전파하는 한편, 때에 따라서는 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과감하게 이양하는 것까지도 준비하고 감내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 인터넷기업들은 초창기와는 달리 사회적 책임을 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참여형 민주주의의 확산은 이용자들의 식견과 행동력을 배가시켰다.

 자율 규제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얘기다.

 이에 민간 사업자단체에서도 ‘안전한 인터넷 센터(SIC·가칭)’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자 주도형 자율규제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지난 2000년 유럽에서 탄생된 국제내용등급위원회(ICRA)는 중요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위원회는 유럽연합(EU)과 마이크로소프트·야후·아메리카온라인 등 세계적인 기업이 공동투자해 운영하는 비영리 기구로서 자율규제의 국제 표준과 보급활동의 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최소한 그들과 보조를 맞추든지 우리의 표준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안전한 인터넷을 위한 자율규제. 정부의 제도적 방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민간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도 없다. 정부의 체계적 지원과 사회적 책임을 가진 사업자의 자율규제 활동이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허진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hur@iworl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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