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자료관시스템]정보 민주주의 빗장 열린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고대 유적지인 ‘아고라(Agora)’는 본래 시장(市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산실의 대명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일(경제) 뿐 아니라 웅변가의 연설(정치), 공연(문화), 공통 관심사에 대한 군중 토론(여론) 등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투명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가 바로 세운 우리나라의 ‘신문고 제도’ 역시 기성 사법·행정·입법 제도 틀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동시에 지도층과 민초가 직접 교감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도 열린 공간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치우침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이 과정을 통해 가치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인류가 가지는 보편적인 욕구 내지 지향점이다.

 이제 인류는 발달된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정보를 투명하고 평등하게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인터넷 혁명으로 이제까지 한 곳에 집중돼 있던 정보가 대중의 삶 속으로 침투하면서 정보의 양과 질을 바꾸고 있고 이는 정치, 문화, 경제 등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전자정부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자료관시스템 구축사업 역시 국민에게 열린 참여정치, 투명한 민주정치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자료관시스템 구축사업은 우리나라의 각종 공공 자료를 보관하는 정부 기록보존소의 방대한 정보와 각 공공기관의 공문서를 디지털 정보로 보존, 관리하기 위해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국책사업이다.

 우리나라 기록물관리법 시행령 제2조 6항에 명시된 정의에 따르면 자료관시스템이란 “정부 자료관 또는 통일, 외교, 안보, 수사분야 특수자료관에서의 기록물의 수집과 복제본제작 및 보존매체수록을 포함한 보존, 활용, 이관, 정보공개청구의 접수 등 기록물의 관리가 전자적으로 수행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자료관시스템은 공공기관이 종이서류로 보관해 온 기록물의 관리업무를 디지털화해 운영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향상시키고 국민들이 공공정보를 보다 쉽고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참여를 촉진하며 전자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9년 1월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을 제정, 공포하고 이듬해인 2000년 1월 이후 이 법령을 시행해 중앙행정기관과 산하 기관, 특별시·광역시·도 및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와 전국 교육청, 국·공립대학에 자료관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자료관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공공 기관은 전국에 걸쳐 대략 700여 군데. 이들 기관이 연평균 50만건의 문서를 처리하기 위해 차례로 자료관시스템 설치에 나서면서 시스템 구축·운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DB, 서버 등 막대한 관련 수요를 예고하며 새로운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업계에서 대략 추정하는 자료관시스템의 시장규모는 내년까지 모두 2800억원∼3500억원 가량이다.

 기관별 자료관시스템 구축 비용은 한 기관 당 평균 4∼5억원 선. 그러나 자료관을 도입하는 조직의 성격이나 생산되는 문서 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편차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조달청이 자료관시스템 조달단가를 아직 책정하지 않은 상태이고 공공기관의 입찰 방식이나 발주방법에 따라 실질적인 사업규모는 아직 유동적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수요에 이어 금융,보험,제조,서비스 등 일반기업의 전자기록물관리부문의 수요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데다 국내 수요를 기반으로 동남아와 기타 해외 전자정부 시장 진출까지 고려할 수 있어 일각에서는 이 시장이 향후 2∼3년내에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불황으로 극심한 IT경기 침체와 수요 부족의 늪에 빠져 있던 DBMS·EDMS·그룹웨어 업계는 ‘가뭄끝 단비’를 만난 듯 드물게 찾아 온 수혜를 톡톡히 누리기 위해 자료관시스템이라는 신규 시장에 말 그대로 사운을 걸고 있다.

 정부가 지난 8월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 주관으로 실시한 자료관시스템 인증시험에는 한국정보공학, 핸디소프트, 나눔기술 등 그룹웨어업체와 트라이튼테크, 송원정보시스템, 아이티센네트웍스, 사이버다임 등 EDMS업체 15개가 참여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1차 인증에 합격한 업체는 한국정보공학, 핸디소프트, 이노디지털, 가온아이, 사이버다임, 아이티센네트웍스, 송원정보시스템, 트라이튼테크 8개 업체. 나눔기술, 삼성SDS, 소프트파워, 동방시스템, 드림투리얼리티, 유니온정보시스템, 케이아이티와 7개 업체와 와이즈소프트, 한국문헌정보 등은 진행 중인 2차 인증 시험에 참여해 테스트를 받고 있다.

 전문 솔루션업체 뿐 아니라 SI업체들도 자료관시스템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거나 전문업체와 제휴를 맺고 시장 진입 채비를 마친 상태다.

 삼성SDS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인증 시험에 도전했고 쌍용정보통신은 정부 인증을 통과한 사이버다임과 손을 잡았다. 다국적기업도 시장 경쟁에서 예외는 아니다. 레가토시스템스를 인수한 EMC는 한솔텔레컴 등 SI업체와 손잡고 그동안 공공시장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 공공기관 전자문서관리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어도비시스템즈 등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공공서비스 개선’과 ‘신 산업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자료관시스템은 관심과 기대가 큰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주관부처인 행정자치부의 방침과는 다르게 독자 행보를 선언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불협화음으로 자료관시스템의 사업 추진 체계와 질서가 흔들리는 점이다.

 정부기록보존소의 표준 규격 발표와 조달청의 인증업체 등록 절차가 진행되는 것과 별개로 지자체들이 별도의 규격을 표방하고 업체를 선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초기부터 국책사업의 난맥상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또 내년도 중앙부처의 정보화 예산에서 자료관시스템이 배제됨에 따라 연평균 50만건씩 새로 생성되는 공공기관 문서데이터에 대한 중앙집중적인 관리·공유체계를 실현한 후 전자정부시스템에 연계하려는 행정자치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사고’의 백년대계를 그려낼 자료관사업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각계의 고른 의견과 충분한 검증, 분석을 토대로 전자정부의 주춧돌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앞선 전자정부 서비스를 구현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세울 만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브랜드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국책사업을 시장성있는 산업과 연계하는 종합적인 시각을 가져줄 것을 정책 당국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조윤아 기자 forang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