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 `기꺾인` 토종-`물오른` 외산

관련 산업계 양극화 현상 뚜렷해져

 ‘막막한 국산 ERP. 즐거운 외산 ERP.’

 국산 전사자원관리(ERP) 업계가 경기침체 및 KAT시스템 법정관리 파동으로 비상경영에 돌입했지만 외산 ERP업체들은 올 하반기의 초대형 정보화 프로젝트를 과점, 관련 산업계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산 ERP업체들은 산업자원부의 ‘중소기업 IT화 사업’에서 선두권의 실적을 낸 KAT시스템이 흔들리면서 기존 고객에 대한 유지보수서비스 신뢰도를 유지하고 수익 창출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따라서 신규 고객, 특히 대기업용 ERP 프로젝트에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반면 SAP코리아와 한국오라클은 지난 3분기 SK텔레콤, 한솔제지에 이어 올 4분기에 본격화될 동부아남반도체, LG전선, 현대중공업의 대형 ERP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삼아 그간의 불황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오라클(대표 윤문석)은 최근 SK텔레콤의 차세대 마케팅(NGM)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서 SAP코리아를 물리치고 고객관계관리(CRM)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공급권을 따내면서 먼저 웃었다. 당시 SK텔레콤의 CRM 패키지 도입계획은 확장형 ERP분야의 준거(레퍼런스)사이트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돼 두 외산 ERP업체는 물론이고 토종 ERP업체들의 관심이 집중됐으나 장기불황의 여파로 사업제안서를 제출할 만한 여유를 가진 국내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SAP코리아(대표 한의녕)는 최근 제지산업분야의 최대 ERP 고객이 될 한솔제지의 경영혁신(PI)프로젝트에서 ‘마이SAP 비즈니스 스윗’의 10개 모듈을 공급키로 계약, SK텔레콤 CRM 수주경쟁에서의 고배를 한국오라클에 되돌려줬다. 이 회사는 이달부터 액센추어와 함께 한솔제지 ERP 컨설팅 및 구축작업을 개시해 1년 안에 완료할 계획이다.

 이처럼 지난 3분기 이후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경쟁에서 일대일의 스코어를 기록한 한국오라클과 SAP코리아는 4분기를 맞아 재격돌하고 있다.

 먼저 지난 17일 제안서를 마감한 동부아남반도체의 ERP, 공급망관리(SCM), 인사관리(HR), 경영전략관리(SEM)을 포괄하는 정보화 프로젝트에서 SAP코리아와 한국오라클이 토종 ERP업체들의 방해(?)없이 맞대결한다. LG전선의 5개 공장, 16개 해외법인 및 지사에 대한 업무프로세스혁신(PI)작업의 주춧돌이 될 ERP시스템 도입계획도 이달 중에 제안서 제출을 마감할 예정인데 아직까지 SAP코리아와 한국오라클 이외에는 도전장을 내밀 국내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이 올 연말 설계·생산지원시스템을 고도화하고 협력사를 포괄하는 물류·구매·경영지원시스템 확립하기 위해 본격화할 정보화 프로젝트에서도 외산 ERP업체들의 독차지가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지원사업에 힘입어 외형을 확장해온 국산 ERP업체들에게 내실경영의 과제가 던져져 당분간 대형수요처는 외국업체들의 몫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내업체들의 입장에서는 기존 고객에 대한 안정적인 유지보수서비스에 주력함으로써 KAT시스템 법정관리 파동이 불러온 국산 ERP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게 당면과제”라고 말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